수조원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회계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회계투명성 개선 없이는 기업들의 지속적인 성장과 투자자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기업의 내부감사 기능 강화, 외부감사의 독립성 및 회계법인의 책임 강화, 금감원 감독 권한 강화 등의 세 가지 측면에서 현행 회계제도를 손질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엔론 등의 회계 부정 사태를 계기로 2002년도에 도입한 ‘사베인스-옥슬리법’(일명 삭스법)의 한국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삭스법은 매우 혁명적인 회계투명성 강화 법안으로, 회계법인에 대한 감독기구를 신설하고, 기업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분식회계를 한 경영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하는 것 등이 핵심으로, 기업의 회계투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편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삭스법을 준수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크게 증가하고 경영자의 형사처벌 위험도 커졌기 때문에 보통 불편한 법이 아니다. 그래서 뉴욕증시에 상장한 회사들 중에 런던증시로 옮기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고, 요즘도 미국기업들은 삭스법의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의 삭스법이 제정되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우리나라가 삭스법과 매우 유사한 회계개혁법을 2003년에 제정했다는 점이다. 주요 골자가 기업의 회계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책임을 강화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내부회계 관리법을 제정한다는, 미국 못지않은 강력한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회계투명성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법의 완화를 주장하는 기업들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이런 법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내부회계 관리법은 기업들이 형식으로 시늉만 내는 바람에 유명무실한 법이 되고 말았고, 그러다 보니 저축은행 사태나 조선업 사태와 같은 대형 회계 부정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추진하는 한국판 삭스법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들이 없다. 이를 추진하는 금융위도 법만 제정하면 할 일 다 했다고 생각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금융위 공무원 중에 회계 전문가도 없고 회계투명성이 주된 관심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제정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회계투명성을 원하는지를.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선진국 수준의 회계투명성을 원한다면, 겉만 번지르르한 한국형 삭스법 얘기를 또 써먹을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감독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금융감독원 내의 말단 회계감독본부가 아니라 선진국 수준으로 회계투명성의 달성을 책임지는 총리실 직속의 회계감독원 설립이 필요하다. 상장기업과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조직과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회계감독을 총괄하는 조직을 통해 부실회계를 근절해야 한다. 이 정도 규모의 조직개편은 당장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다음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금부터 면밀히 검토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회계감독원의 출범은 대내외로 회계투명성에 대한 우리나라의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세계 최하위 수준인 우리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런 정도의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두 번째의 한국판 삭스법도 머지않아 또 다시 잊힌 법이 되고 말 것이다.
김지홍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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