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황준호 특파원]지난 4년간 국제사회의 무역 분쟁 해소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으로 활약한 장승화 서울대 교수에게 안따까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는 통상분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비견되는 권위를 지닌 WTO 상소기구의 우리나라 최초로 위원으로서 자신의 맡은 바 책무를 다했다. 장 위원은 1995년 WTO 창립 이후부터 일본 위원이 꿰차고 있던 자리에, 2012년 한국인 최초로 올라 앉았다.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관례상 연임이 돼야 정상적이지만 미국의 반대로 그는 제네바 사무실 책상을 정리했다.
WTO 회원국은 물론, 전직 위원들까지 미국의 반대는 상소기구의 공정성을 뒤흔들 수 있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이달 21일 열린 WTO 분쟁조정기구 회의에서도 미국은 더욱 강하게 연임에 반대했고 WTO는 결국 장위원의 후임 인선을 시작키로 했다.
미국이 그를 반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외신들은 최근 장 위원이 관여한 3건의 소송이 미국 측의 불만을 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지난 5월 "상소기구 위원 중 일부는 추상적이기까지 하다"며 "상소기구의 역할은 추상적인 결정을 내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분쟁(미국이 9~13% 반덤핑 관세 부과)에서 패소해 WTO 상소 절차에 돌입했는데 장 위원의 연임을 찬성할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확실한 건 미국이 전세계의 불편한 이목이 집중됐음에도 오히려 입장을 강경하게 밀어부쳤다는 사실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일 중국산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정용 세탁기에 대해 각각 반덤핑 예비관세 111%와 49%를 부과하기로 했다. 21일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한국산 내부식성 철강제품(도금판재류)이 최대 4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키로 했다. 세계화를 주도하며 WTO의 근간이 된 GATT를 이끌어 온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도발이 중국을 노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3657억달러로 전체 무역적자(7360억달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은 앞으로 더 강해질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목소리는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양당 후보들의 강력한 발언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 2의 장승화 위원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도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늦지 않은 대응으로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꼴을 조금이나마 방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뉴욕=황준호 특파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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