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계 경제가 전인미답의 영역에 들어섰다. 유럽연합(EU)의 핵심 회원국 중 하나였던 영국이 EU 탈퇴를 선택했다. 43년 전인 1973년 유럽경제동맹체(EEC)에 가입함으로써 유럽 통합 역사에 동참했던 영국이 역사를 되돌리기로 한 것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2차 세계대전 후 진행됐던 유럽 통합의 역사가 중단되고 유로존·EU 체제가 붕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축통화 중 하나인 영국 파운드화가 폭락하면서 새로운 통화전쟁이 발발할 가능성도 커졌다.
◆파운드發 통화전쟁 벌어지나= 미국 채권펀드 핌코는 파운드화가 최대 30% 급락해 역대 최저치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파운드발 통화전쟁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유로화에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상 초유의 EU 탈퇴 국가가 나오면서 유로라는 인류 최대의 경제 실험이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영국중앙은행(BOE) 자료를 인용해 영국이 지난 1년간 외환보유고를 12% 늘렸다고 전했다. 영국이 브렉시트시 파운드화 급락에 대비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위한 실탄을 많이 비축해 뒀다는 것이다.
당장 일본은행(BOJ·일본 중앙은행)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엔화가 급등하면서 달러당 100엔선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BOJ 입장에서는 지난 2013년 3월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선언하면서 지난 3년간 추진했던 3년여 간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BOJ의 차기 통화정책회의는 다음달 28~29일 예정돼 있어 한 달이나 남은 상태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 엔화 강세가 멈추지 않을 경우 긴급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대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면서 중국 위안화를 비롯한 신흥시장 통화는 급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 인민은행도 위안화 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대규모 시장 개입에 나설 수 있다.
◆스페인 포데모스, 총선 돌풍 일으키나= 브렉시트로 인해 무엇보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유럽 정치 지형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오는 26일 스페인 총선에서 반유로 정당인 포데모스에 이번 브렉시트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붕괴되고 있는 EU 체제에 더 이상 기댈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인 도널드 투스크는 지난주 "브렉시트가 정해지면 EU뿐만 아니라 서방 정치 문명 전체의 붕괴가 시작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영국의 EU 이탈이 현실화하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서도 EU 이탈의 시비를 묻는 국민 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적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밝혔던 프랑스 극우 야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대표는 "영국이 EU를 탈퇴해 프랑스도 EU에서 탈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프랑스는 내년 상반기에 대선이 예정돼 있다. 17년 만에 집권했던 좌파 사회당 정권이 정권을 내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르 펜은 내년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주 지방선거를 다시 한번 반유로 정당인 오성운동의 돌풍을 확인한 이탈리아에서도 유로존 탈퇴를 위한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TV 토론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유로존 탈퇴 여부를 결정하자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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