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금융당국이 자율협약을 진행 중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정상화 이후 합병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정부가 그리고 있는 해운사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3일 열린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양대 해운사의 경영 정상화가 마무리되면 두 회사를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감자와 출자전환으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대주주로 올라설 경우 채권단 주도로 인력 구조조정, 사업부문간 통폐합 등을 통한 빅딜을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 차원의 양대 선사 합병론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해운을 비롯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5대 취약 업종(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정부와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처음 합병론이 제기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산업은행 등 경제 실세들이 참여하는 경제현안회의(서별관회의)에서 이번 해운사 구조조정의 큰 틀이 정해졌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를 다 살리기 어렵다면 강제 빅딜을 통해 양대 선사를 단독 선사로 합치는 방안도 논의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임종룡 위원장의 발언은 '한진해운 압박용'으로 풀이된다. 현대상선은 이달 1일과 10일에 각각 사채권자 채무재조정, 용선료 협상 타결 등 여러 고비를 넘겨 정상화를 마무리 중이지만, 한진해운은 현재 정상화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긴급 운전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용선료 장기 체납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초기 단계인 용선료 협상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당국까지 나서서 '소유자가 있는 개별 회사인 만큼 대주주가 유동성을 직접 마련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경영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위기 의식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지금까지 '양대 해운사의 합병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혀왔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부족자금 규모가 내년까지 1조~1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위기감을 키웠다. 한진그룹은 최근 채권단에 부족자금 일부인 6000억원을 긴급유동자금으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먼저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에 1000억원의 자금 수혈을 해준 사실을 감안할 때 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있는 양대 선사 구조조정에 대한 밑그림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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