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떠들썩한 한국 방문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불과 6일간의 일정이었지만 반 총장은 숱한 화제를 뿌리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이 내심 이번 방한을 ‘대선 출마 시나리오’에 따라 준비했다면 당장은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최근 실시된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반 총장은 당당히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라는 후광을 업고 돌아온 반 총장을 맞이하는 뉴욕, 특히 유엔 주변의 공기는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공교롭게 반 총장의 방한을 앞두고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그를 ‘힘없는 관측자’라고 혹평했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반 총장을 “가장 우둔하며(the dullest) 최악의 총장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반 총장에 대한 유엔 주변의 평가는 후한 편이 아니다. 최근에 만난 한 유엔 관계자도 “선정적인 3류 잡지도 아닌 이코노미스트가 반 총장에 대해 그처럼 신랄한 표현을 쓴 것이 다소 놀랍다. 유엔 주변의 기류를 반영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반 총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성공한 사무총장’을 강조해왔다. 뉴욕의 한국 특파원들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물을 때마다 “내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선을 그었다. 지난 달 18일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만찬에서도 그는 “아직 임기가 7개월 남았다”면서 “이번 방한에 정치적 해석을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반 총장의 평소 주장대로 남은 ‘성공한 사무총장’과 남은 임기 7개월은 중요하다. ‘무능했던 사무총장’으로 주저앉는 것은 10년동안 열정을 바쳐온 반 총자에게도 치명적이고, 국제무대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유엔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마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반 총장은 이번 방한을 통해 성공적 사무총장 마무리를 위한 논리와 방어막을 자기 손으로 뒤집어 엎은 셈이다. 앞으로의 일거수 일투족도 한국 대선과 연계되면서 운신의 폭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싸늘한 시선을 지닌 유엔의 관찰자들에겐 임기를 마치자마자 한국 정치에 뛰어들 것 같은 반 총장의 행보는 또 하나의 ‘먹잇감’ 정도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남은 임기 7개월은 성공한 사무총장의 당초 목표를 달성하는데 벅차고 위태롭게 보인다. 반 총장으로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그에 따른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 경륜과 노력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다.
내년 한국 대선에 뛰어들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패한 유엔 사무총장’이란 멍에는 대선판에서도 환영받기 어렵다. 주변이 아닌 반총장 스스로 ‘대망론’을 잠시 뒤로하고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는 데 전력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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