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도 8~9개월 동안 조선3사 수주 0건
초호황기때 일감 모아둬 실적 끄떡 없어
여러 악재로 최악의 실적에다 구조조정까지 겹친 지금과 달라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수주 절벽의 위기감에 휩싸인 조선업계가 '2009년 데자뷔'를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지금과 같은 '수주 절벽'에 맞닥뜨렸다.
삼성중공업(2009년 2월~10월)과 대우조선해양(2008년 9월~2009년 5월)은 9개월 동안, 현대중공업(2008년 10월~2009년 5월)은 8개월 동안 수주 실적이 '제로'였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가 무너지면서 선박 발주가 끊긴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악재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2009년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24일 본지가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의 2009년 자료를 조사해보니 당시 세계시장의 선박 발주 물량은 437만 CGT(선박의 무게에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를 고려한 계수를 곱해 산출한 단위)였다. 초호황기였던 2007년에 비해 81%가, 2008년에 비해선 68%가 떨어진 수치였다. 발주 물량이 줄어든 것도 문제이지만, 당시에도 '저가 수주'를 앞세운 중국이 물량을 싹쓸이했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그때는 수주 성적이 바닥이었지만 아무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삼성중공업만 해도 당시 40개월치 일감이 쌓여 있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3년 후 인도될 배까지 지금 수주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초호황기 때 일감을 많이 모아둔데다, 그 선박들이 속속 인도되면서 돈이 들어오니 실적도 좋았다"고 회고했다.
지금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따른 수주 절벽 외에도 해양플랜트 부실, 저가 수주로 인한 실적 악화라는 악재까지 겹쳐 있다. 해양플랜트 건조 능력만 있던 조선 3사가 기본 설계까지 도맡았던 게 화근이었다. 뜯어내고 다시 짓는 과정을 반복하며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해 올해 초 인도한 송가프로젝트만 봐도 1조원 손실을 냈다.
저가 수주도 화근이었다. 조선사들의 실적 압박에 선가를 경쟁적으로 내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상선의 경우 손실프로젝트 수주시점이 2012년부터 시작돼 2013년에 정점에 이른다. 이로 인해 실적이 악화되자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조선3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는 중이다.
다만 발주가 살아날 것이란 신호는 감지되고 있다. 유가와 철광석 값이 오르는 중이다. 유가는 올 1월 배럴당 22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현재(24일,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44.87달러까지 올랐다. 업계는 60달러까지 오르면 해양플랜트 발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업계 관계자는 "심해 시추시 손익분기점을 맞추려면 유가가 최소 52불은 되야한다"며 "60불을 넘어서면 발주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박의 원재료인 철광석 값도 오르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철광석 값이 상승세를 타면 선박 가격이 오를 것을 감안해, 선주들이 미리 발주를 내놓는다고 분석한다. 올해 1월 t당 40불이었던 철광석 가격은 4월에 60불대까지 올랐다. 현대중공업은 SK E&S와 곧 LNG선 건조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백점기 부산대학교 선박해양플랜트 기술연구원장은 "지금은 세계 경기가 나빠서 선박 발주가 안 나오는데 2~3년 내로 좋아질 것"이라며 "실력있는 엔지니어까지 내보내면 업황이 회복되더라도 경쟁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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