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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창조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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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창조규제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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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1980년대 말 민간주도를 내세울 만큼 그 역량이 성장하였고, 여기에 세계화라는 외생변수가 겹치면서 탈규제가 불변의 진리로 정착됐다. 이제 어느새 '규제는 우리의 적'이라고까지 호도되고 있으니 규제가 무슨 빨갱이나 되는 듯하지만, 국가기능의 중심에 있는 규제의 뜻과 기능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규제를 통해 국가가 어떠한 기능을 해야 하는지 카놀라유를 사례로 해서 살펴보자.


카놀라유는 추석이나 설날에 받는 선물세트를 열어보면 종종 들어 있는 식용유이다. 발화점이 높아 튀김에 많이 쓰이는 이 기름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유채에서 나는 것이니, 이름은 생소해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채(油菜)는 씨앗의 40∼50%가 기름인, 그야말로 기름 채소이다. 그런데 이 기름은 아쉽게도 맛이 쓰고 살충제로도 쓸 정도로 독성이 있다. 그 독성물질 중에 에루스산(erucic acid)은 영화로도 유명한 로렌조 오일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렇게 유채기름은 본래 식용이 아니라 공업용으로 쓰였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도 유채꿀을 채취하는 외에는 주로 줄기가 올라와 꽃이 피기 전에 나물로 먹었던 것이다.)

이것을 1990년대 캐나다에서 유전자조작기술을 써서 식용에 적당하도록 성분을 바꿨다. 식용으로 상용화를 하려 하니 본래 이름인 rapeseed oil의 rape의 뜻(강간)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라 이름 캐나다를 따 개명을 했다. 카놀라(canola)는 캐나다(Canada)의 기름인 셈이다. 이제 북미대륙에서 경작되는 유채의 90%가 GMO(유전자변형생물)이며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자생 유채의 80%가 이 GMO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에도 이 기름이 있고, 식용유로 쓰인다. 그것도 중국이나 캐나다, 인도와 비교해도 생산량이 많아 세계 제일이다. 유전자 조작 농작물은 유럽연합이 철저하게 규제를 하고, 유럽연합으로 농산물을 수출하는 주변국가도 마찬가지인데도 말이다. 유전자 조작 규제를 극복하기 위해 종자개량을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유채 경작 관련자들이 꾸준히 독성물질을 줄여서 1970년대에 2% 이하, 80년대에는 0.1% 이하로 낮췄다. 이제는 콩기름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고급 식용유가 된 것이다. 독일 슈퍼마켓에서라면 'Rapsol'이라는 표시가 붙은 기름을 사면 된다.

이것이 유럽과 북미의 거리, 규제와 탈규제의 차이다. 한쪽은 규제를 통한 육종기술의 발달 덕분에 고급 식용유를 얻었다면, 다른 쪽은 탈규제로 인해 선물로 받기도 찜찜한 유전자 조작 기름을 식당에서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받는 선물은 유감스럽게도 카놀라유지 'Rapsol'이 아니다.


국가부재가 입에 오르고 있다. 2년이 넘도록 세월호는 그대로이다. 그 훨씬 이전에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는 여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질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고 있는 미세먼지도 국내의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와 화석연료는 덮어둔 채 중국의 황사 탓만 하고 있다. 중증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과 같은 재난은 국가가 아니라 삼성병원이 막아야 한다는 공무원들에게, 의사가 주사기를 재사용하여 C형 간염에 대량 감염시킨 것에 관하여, 도대체 국가에는 어떤 책임이 있는지 묻기에도 숨이 차다. 어떤 방식의 규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진지한 생각 없이 탈규제나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많은 경우 단지 무책임한 정부를 향하는 비판에 대한 입막음일 뿐이다. 거대한 퍼즐이나 레고를 완성하듯 한 조각씩 끼워 맞추고 잘못 맞춘 것은 빼서 다시 끼우는 수밖에 없다.


경제적 부가가치는 시장에서 창출된다. 그것이 신소재이든, 신시장이든, 제조 및 유통, 판매의 노하우이든, 새로운 것은 경쟁을 통해 발견된다. 이것이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말한 '경쟁을 통한 발전'이다. 그 경쟁이 사회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필요하다면 축적의 시간을 갖도록, 창조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창조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말이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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