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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환율전쟁] 환율전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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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경쟁, 즉 환율전쟁이 처음 발발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였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환율전쟁이라는 용어는 통용되지 않았다. 당시 국가간 교역 규모가 극히 적어 환율의 중요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주요국의 통화정책은 19세기 영국에서 발달한 금 본위제였다. 즉 자국 통화와 금의 교환 비율을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국가간 환율이 결정됐다.

금 본위제 하에서는 자국 통화를 금으로 교환해줘야 했기 때문에 화폐를 마음대로 발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전비 조달을 위한 화폐 발행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각 국은 금본위제를 포기한다.


금 본위제의 포기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초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다시 속속 국가들이 금 본위제로 복귀한다. 하지만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각국은 자국의 통화가치를 정할 때 상호조정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고평가된 통화와 저평가된 통화로 나뉘면서 무역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다.

때마침 세계 경제는 1929년부터 시작된 공황의 시기로 빠져들었고 결국 대외 무역적자가 늘던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파운드화 평가절하에 나섰다. 일본도 당시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공격적인 통화, 재정정책을 시행해 1932년 중에만 엔화가치를 60% 이상 떨어뜨렸다. 미국도 1933년 금본위제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같은 금본위제 포기에 이은 경쟁적 통화 평가절하는 결국 세계 교역을 위축시켜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1985년 플라자 합의는 달러 약세를 용인한 국제 공조가 이뤄진 결과였다. 플라자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어려움을 겪으면 세계 경제에 좋을 것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환율전쟁은 다시 불거진다. 미국 주택가격 급락으로 촉발된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달러화를 대량으로 풀게 된다. 달러 발행량이 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떨어졌고 이는 전 세계적인 무역 분쟁을 촉발하는 단초가 됐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2010년 미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 화폐 가치가 오르고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만테가 장관은 미국의 양적완화는 달러가치를 떨어뜨려 글로벌 환율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자 합의 때와 달리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줄었고 이에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영국, 일본, 유럽중앙은행(ECB)으로 번져갔고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유동성 살포가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정책 공조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돈을 풀어도 경기 회복은 요원하고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공포만이 남은 상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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