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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삼각관계 영화' 금지에 분노한, 간통죄1호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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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10년전 오늘 타계한 거장 신상옥감독

북 '삼각관계 영화' 금지에 분노한, 간통죄1호의 남자 신상옥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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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22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북한 영화가 개봉됐다. 제목은 '불가사리'. 나라가 흉흉할 때 불가사리가 나타나 쇠를 모두 먹는다는 고려민담을 소재로 만든 괴수영화였다. 1985년 북한에서 완성된 이 영화가 15년 뒤 흥행에 성공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불가사리'는 국내에 개봉한 첫 북한영화라는 것 외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든 이가 50년대 이후 한국 영화계의 버팀목이었던 신상옥 감독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신 감독의 스토리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웅변한다.


11일은 고 신상옥 감독 타계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2006년 4월 11일 향년 80세로 별세했다. 북한에 의한 납치와 정치범 수용소 생활도 견뎠던 것으로 전해진 신 감독이지만 말년에 찾아온 간암을 이기지 못했다. 신 감독은 1952년 '악야'로 데뷔해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연산군', '빨간 마후라'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하지만 신 감독은 1959년 여배우 최은희와의 결혼, 1978년 홍콩에서의 납북, 1986년 북한 탈출 등 자신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우선, 신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당대 톱 여배우였던 최은희의 남편은 김학성 촬영감독이었다. 남편과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 감독을 만나면서 최은희는 '간통죄 1호'라는 비난도 받았다고 한다. 여하튼 신 감독과 최은희는 결혼 후 '상록수', '어느 여대생의 고백',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작품을 함께하며 각자 감독과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신 감독이 여배우 오수미와 외도를 하고 사이에 두 명의 자식을 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둘은 1976년 이혼했다. 북한에 납치된 1978년 신상옥-최은희는 부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1월에 먼저 최은희가 납북됐고 이어 7월에 신 감독이 납북됐다. 실종된 전처를 찾으러 다녔던 신 감독을 북한이 데려갔다는 게 당사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최은희는 납북이 맞지만 신 감독은 자진 월북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 감독이 1970년대 유신정권의 검열에 앞장서 반대했고, 1975년 '장미와 들개' 예고편의 검열 삭제 부분을 극장 개봉 때 다시 붙여 상영하다 적발돼 그가 세운 신필름의 허가가 취소되는 등 남한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신 감독이 납북된 후 수차례 탈출을 시도했다고 밝혔고 5년 이상이 지난 다음에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자진 월북설은 근거가 약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게다가 회고에 따르면 1978년 나란히 납북됐지만 이 둘이 만난 것은 5년 뒤인 1983년이었다고 한다.


최은희와 북에서 다시 만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검열'은 여전히 그의 창작 활동을 압박했다. 신 감독은 그의 책 '난 영화였다'에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경험에 대해 이렇게 썼다. "북한 영화 발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는 '김일성의 교시'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걸핏하면 엉뚱한 교시를 내놓는데, 이것은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누구나 따라야만 한다. 춘향전은 찍지 마라, 훌륭한 영화가 되려면 반드시 좋은 노래를 넣어야 한다, 강간 장면 같은 것은 안 된다, 삼각관계는 불건전하므로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숨통을 막아 놓는다. 나는 북한에 있는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일에게 '개인숭배에서 벗어나라'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야 영화도 활기를 되찾고 나라 전체도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감독과 최은희는 납북된 지 8년 만인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의 미국 대사관을 통해 탈출했다. 신 감독은 이후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마유미'(1990),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실종 사건을 다룬 '증발'(1994) 등을 만들었고 199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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