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1983년 4월, 대학도서관에서는 아직도 목탄연료를 땠다. 시커먼 무쇠 난로 속에서 불기운이 이글거렸다. 난로의 몸뚱이와 함석연통이 연결되는 곳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곳에서 아놀드 하우저나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을 두서없이 읽어댔다. 가끔은 책에 붙들려 수업시간도 점심시간도 지나쳐버리곤 했다.
어느 날, 불행히도 내가 기록하지 않은 그 어느 날, 나는 임화의 시를 읽었다.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부스러기가 손가락에 달라붙을 것처럼 낡은 책장을 뒤적이며. 아주 이상한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오빠와 화로' 같은 시는 분명 여성의 감성으로 읊조리는 듯한데 거기 강인한 메시지가 잠복했다. 그러나 정말 나의 시선을 붙든 작품은 '담-1927'이다.
'부르죠아지의 ××-/1918/이백만의 푸로레타리아를 웰탄 요새에서 ××한/그놈들의 ××행위는 악학(惡虐)한 수단은/스팔타키스트의 용감한 투사/우리들의 '칼', '로-사'를 빼앗았다./세계의 가장 위대한 푸로레타리아의 동무를/혁명가의 묘지로 몰아넣었다./그러나 강철 같은 우리의 전열은/×인자-그들의 폭학(暴虐)도 궤멸케 하지를 못하였다.'
복자(伏字)가 여럿 등장하지만 뜻은 헤아릴 수 있다. 이 시는 1927년 11월에 나온 <예술운동>의 창간호에 실렸다. 문학 연구자들은 이 작품에 임화가 추구한 정치문학의 정수가 들어 있다고 본다. 한기형은 "고양된 혁명의식과 절제된 사실묘사가 결합돼 혁명적 모더니티의 직설적 간결함을 드러낸다"고 했다.
두 가지 점에서 나의 기억에 생생하다. 첫째, 고등학생 때 읽은 이상의 시와 흡사한 부분을 발견하고 놀랐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疾走)하오'로 시작되는 '오감도- 시 제 1호'. '담-1927'에는 '제1의 동지는 뉴욕 사크라멘트 등지에서 수십 층 사탑(死塔)에 폭탄 세례를 주었으며/제2의 동지는…(중략)//제8의 동지는…(후략)'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한기형은 임화는 혁명의 도미노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을 연속되는 수자의 지속적 배열을 통해 암시했다고 본다. 흥분과 긴장을 고조시키며 종말론적 절박함을 연상시키는 임화의 수사 전략은 이후 이상의 '시 제1호'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김윤식은 이 시를 미래파 및 다다이즘의 세례가 프롤레타리아 시의 예술성에 기여한 전형적인 사례로 설명했다.
며칠 뒤 개가식 도서관에서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을 때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날 오전, 막 점심시간이 시작될 때쯤 한 여학생이 중앙도서관의 4층 유리창을 부수고 난간에 나와 유인물을 뿌렸다. 선혈이 손목에서 솟구쳐 4월의 공기 속에 안개처럼 흩어졌다. 교내에 상주하던 사복경찰들이 이내 여학생을 붙들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알고 있었다.
다시 꺼내 읽은 임화의 시에서 '로자'라는 이름이 고개를 들고 나를 마주보았다. 로자 룩셈부르크. 그는 1871년 3월 5일 폴란드의 자모시치에서 태어났고 1919년 1월 15일 독일의 베를린에서 죽었다. 사전은 그를 '폴란드 출신의 독일 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가', '사회주의자, 철학자 또는 혁명가', '레닌주의 비판자', '독일 사회민주당의 이론가'라고 설명한다.
흔히 그를 폴란드인, 유태인, 다리를 저는 장애인, 여성이라는 4중고와 싸우며 성장한 혁명가라고 한다. 절름발이 유대인 여성으로 태어나 평생을 투옥과 항쟁으로 점철했다는 것이다. 로자의 장애는 체 게바라의 지병을 떠올리게 한다. 피델 카스트로와 더불어 쿠바혁명을 완수했으며 볼리비아에서 죽은 체 게바라는 평생 천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체가 그랬듯 로자도 실패와 타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집권 사민당이 제국주의전쟁에 동조해 계급전쟁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이념을 배신하자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해 1919년 1월 봉기를 주도했다. 봉기는 실패했고 로자는 옛 동지였던 사민당 우파 세력에 의해 살해됐다. 시신은 베를린 란트베어 운하에 버려졌다.
5월 31일에 떠오른 로자의 시신은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펠데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2009년 독일 언론은 베를린 자선병원 법의학연구소가 의학사박물관에서 로자로 보이는 시신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추모글은 예언이 됐다.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조차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자들이 그녀를 처형했다네.'
오늘 로자는 체가 그러하듯 클리셰(cliche)다. 젊은이들은 체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는다. 자신이 남다르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고 싶은 걸까. 권력은 내버려둔다. 젊은이도 권력도 체가 안전한 허영임을 안다. 아무도 진짜 체 게바라처럼 살고 싶지 않으리라. 로자에 대한 매혹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평전이나 그와 비슷한 책을 즐겨 읽지 않는다. 근사하게 적어 내려갔지만 플라톤 식으로 말하자면 모방의 모방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로자에 대해 알고 싶거나 이미 매혹되었다면 그가 남긴 글을 읽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자본의 축적>을 읽어라. 그런데….
나는 왜 이틀 전 도착한 '레드 로자'를 붙들고 놓지 못하는가. 모르겠다. 어쩌면 이 계절, 4월의 문 앞에서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러기에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비통한 시대의 한복판에 당신들과 함께 서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이 있는 베를린의 사회주의자 묘역에 높이가 4m나 되는 추모비가 있다. 거기 이렇게 쓰였다. '죽은 이가 우리를 깨우친다(Die Toten mahnen uns).'
huhball@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