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상권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통대기업 늘어
대규모 자금 투자해 중심상권 점포 차지…예상과 달리 적자폭 커져
울려 겨자먹기로 전대계약으로 돌리고 있어
[아시아경제 임혜선 기자]중국인 관광객(요우커)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서울 명동 4길. 매장마다 물건을 사려는 요우커들로 넘치는 서울 시내 황금 상권 중 하나다. 화장품과 의류 등 다양한 매장이 들어선 건물 사이로 불 꺼진 빌딩이 유독 눈에 띈다. 종합 액세서리 전문숍 컨트롤에이다. 이 곳은 최근 문을 닫았다. 매장은 비어 있지만 건물주는 임대료 걱정이 없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가 2017년 9월까지 임대계약을 체결한 덕분이다.
이마트는 2012년 신발 전문점 페이리스 1호점을 이곳에 냈다. 월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주기로 하고 대지면적 189.8㎡인 건물 전체를 임대했다. 이마트는 페이리스 플래그십스토어를 야심차게 냈지만, 판단했던 것보다 수익성이 낮아 1년 만에 폐점하고 전대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인건비 등 각종 운영비에 월세를 5년간 지불하는 것보다 재임대 계약을 맺고 월세라도 아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최근 재임대하기 위해 여러 곳의 부동산 컨설팅 업체에 의뢰를 맡겼다. 이마트가 체결한 계약보다 3000만원 정도 낮춘 금액으로 새 임차권자를 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처럼 '핫(hot)'한 상권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 유통기업이 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중심 상권 노른자위 점포를 차지했지만 예상과 달리 적자폭이 커지자 울며 겨자먹기로 전대계약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전대계약은 부동산의 전세권 위에 다른 전세권을 설정하는 것으로 전세공간의 일부 또는 전체를 다른 임대인에게 다시 임대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 내 주요상권 중 하나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할 수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매달 6500만원의 세를 내기로 하고 2014년 가로수길에 있는 건물을 임대했다. 기존 세입자가 3000만원 수준의 월세를 지불했던 것과 비교해도 차임을 2배 이상 올려 계약했다. 코오롱은 새 브랜드매장을 가로수길에 열기 위해 이 건물을 임대했지만 계획이 변경돼 공사는 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코오롱이 팝업스토어를 여는 세입자에게 재임대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기존보다 2배 넘는 차임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갑자기 계획에 차질이 생겨 매장도 내지 않고 코오롱이 팝업스토어로 재임대주면서 건물이 거의 죽어 있다시피 했는데 최근 다른 외국계 기업이 재계약을 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SK디앤디는 2013년 스타벅스를 내쫓고 건물 1~5층 전부를 20억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SK네트웍스에 재임대했다. 이곳은 현재 SK네트웍스 패션브랜드 타미힐피거가 운영 중이지만, 적자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업이 계약기간 직접 매장을 운영하지 않고 전대로 돌리는 것은 주요 상권이라는 가치에 비해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명동상권은 최근 요우커들이 선호하는 화장품업체들이 장악하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이곳을 떠나고 있다. 천청부지로 오른 임대료를 감수하고서라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브랜드를 알리고자 하는 기업을 제외하고는 명동 상권에서 버티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로수길은 강남보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지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트렌드를 반영하는 안테나 역할을 할 매장으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대다수다. 가로수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제조ㆍ유통일괄화(SPA)브랜드와 국내 대기업들이 서로 입점하려고 경쟁한 탓에 임대료만 올랐다. 임대료와 보증금은 5년간 5배 넘게 뛰었다.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특색있게 거리를 조성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하면 대기업이 대규모 자본으로 상권을 장악해버린다"면서 "무턱대고 임대료를 높여 기존 세입자들을 내쫓고 정작 수익성 악화로 매장을 없애버리면 상권이 죽게 된다"고 꼬집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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