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정치권에 때 아닌 '옥새'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의 현역 컷오프에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 취소'라는 맞불을 놓으며 극한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이어 김 대표의 공식적인 '재의' 요구에도 이 위원장이 "바보 같은 소리"라며 단칼에 거절하자 공천장에 '옥새'를 찍어주지 않는 방안도 검토 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돈 것이다.
옥새는 왕의 도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옥새는 당 대표의 직인을 말한다. 당 대표의 직인이 중요한 이유는 공천장에 당대표의 직인이 찍혀야 온전한 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49조2항에 따르면 정당은 당 도장인 당인(黨印)과 당 대표자의 직인(職印)을 찍은 후보자 추천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내야 공당의 추천받은 후보로 인정된다. 20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는 김 대표의 직인이 '옥새'와 버금가는 위상을 갖는 것이다.
'옥새 전쟁'이 낯선 단어이긴 하지만 우리 정당사에서 벌써 한번 경험한 일이다.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7대 총선 공천 작업 한창이던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과 당 내분사태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던 시기였다.
당을 구하기 위해 '추다크르' 추미애 선거대책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추 위원장은 민심을 돌리기 위해 당시 조순형 대표가 추천한 중진 4인방(박상천·김옥두·유용태·최재승)의 비례 배표 공천을 없던 일로 되돌렸다. 대신 그 자리를 참신한 인물로 채우겠다는 복안이었다. 이른바 '3.30 공천거사'다
하지만 '3.30 공천거사'는 하루 만에 진압 당한다. 조 대표측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조 대표가 본인이 미는 4인방의 추천서에 직인을 찍어 제출하려 했지만 추 위원장 측인 총무국장이 당 대표 직인을 감추면서 일이 커졌다. 격노한 조 대표는 해당 총무국장을 해임하고 경잘에 당 대표 직인 도난신고를 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당 대표 직인 변경신청을 내고 새로 판 도장을 찍어 비례대표 명단을 선관위에 제출했다. 이에 질세라 추 위원장도 자신의 비례대표 명단을 따로 만들어 선관위에 등록했다.
선거를 앞두고 혁신을 위해 추 위원장을 임명했지만 상황이 더 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사태를 두고 누구보다 당혹스러웠던 것은 선관위였다. 두개의 비례대표 명단, 두개의 당 대표 직인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앞에 두고 선관위는 고심에 들어간다. 내부 격론 끝에 선관위는 유권해석을 통해 조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공천권이 추 위원장에게 있지만 공천장을 제출하는 법적 자격은 당 대표에게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리고 공천과정에서 더 큰 분란을 일으킨 민주당은 17대 선거서 학살에 가까운 참패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김 대표는 '옥새'를 휘두를 생각이 있을까? 그는 공천장 직인 거부까지 염두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실제로 직인 거부를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옥새 전쟁'이 일어난다면 선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옥새 전쟁'이 일어난다면 승리는 김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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