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3일 '무제한 토론제도(Filibuster·필리버스터)'를 통해 여당의 테러방지법 처리 시도를 저지키로 했다. 국회선진화법 통과로 약 40년만에 부활한 필리버스터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19대 국회 들어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열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예고한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해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기로 결의했다. 더민주는 이날 의총에서 필리버스터를 당론으로 발의했다. 더민주는 이날 소속 의원 7명의 필리버스터를 통해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통과를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필리버스터는 국회에서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수당이 선택할 수 있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일컫는다. 통상 회의장에서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장시간 연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박한상 전 신민당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중당 소속 의원이던 1964년, 당시 여당이던 민주공화당이 한일협정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일본정부로부터 1억300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김준연 자유민주당 대표에게 체포동의안을 발의하자 5시간19분에 걸친 연설로 이를 저지했다.
박 전 의원은 1969년 박정희 정부의 3선 개선 당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969년 8월 29일 오후 11시10분부터 8월 30일 오전 9시10분까지 10시간 동안 발언한 바 있다. 다만 박 전 의원의 분투에도 3선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이 상정됐을 때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사례가 있다. 다만 당시 강창희 국회의장은 "인사안에 대해서는 반대토론을 하지 않는 것이 국회의 관례"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무제한토론 요구는 19대 국회 들어 2번째다.
이처럼 필리버스터 제도는 당초 헌법에 마련돼 있었지만, 1973년 국회의원의 발언시간을 최대 45분으로 제한하는 국회법이 신설되면서 폐기됐다. 그러나 지난 2012년 개정된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에는 재적의원의 3분의 1일 이상이 요구할 경우 합법적인 필리버스터를 가능하도록 보장했다. 단, 재적의원의 5분의3이가 찬성할 경우 필리버스터는 자동 종결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도 토론 종료를 요청한지 24시간이 경과해야 종료를 위한 투표를 할 수 있다.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 등에서는 필리버스터가 다수당의 입법을 막기 위한 시도로 자주 활용된다. 랜드 폴 미국 상원의원은 지난해 국가안보국(NSA)의 정보수집 프로그램 허용 연장방안을 막기 위해 10시간이 넘게 연설했고, 미국 민주당의 대선후보 중 하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역시 2010년 부유층에 대한 세금감면 연장안을 막기 위해 8시간이 넘게 발언을 이어간 사례가 있다.
다만 필리버스터 시 해당 법안에 대한 발언만 할 수 있게 돼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발언내용에 제한이 없어 전화번호부까지 꺼내 읽거나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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