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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연기와 함께 사라지다, '미스김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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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체인 바람에 멸종해가는 '찻잔 속 한국 근현대사'

담배연기와 함께 사라지다, '미스김 다방' 사진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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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교외, 차 한 잔의 여유와 담배를 즐기려는 손님으로 연기가 자욱한 어느 다방.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이곳을 찾은 이 사장은 미스 김에게 잘 보이려 입에도 안 맞는 커피를 두 잔째 들이켜는 중이다. 그런 이 사장이 안쓰러웠던지 카운터에서 뭔가를 들고 도도한 걸음으로 이 사장 테이블로 향하는 미스 김. 다방 안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를 따라 움직이고, 종이로 감싼 담배를 몰래 이 사장에게 건네는 미스 김. 이를 받아든 그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데…. 이에 질세라 옆 테이블의 김 씨, 미스 김의 손목을 낚아채며 “나도 한 갑 줘!” 따진다. 김 씨를 잠시 흘겨보던 미스 김은 손목을 뿌리치며 “댁은 처음 보는 손님이라 못 줘요!” 라며 앙칼지게 받아친다. 화가 머리끝 까지 난 김 씨는 미스 김의 뺨을 때리고, 미스 김은 이에 질세라 김 씨의 팔뚝을 물어뜯고, 이 사장도 일어나 김 씨에게 달려들며 한바탕 활극이 펼쳐진다.

이 우스꽝스러운 소동은 1971년 파주의 어느 다방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으로, 지난해부터 음식점 및 다방에서의 금연이 전면 시행되면서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달달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의 조화가 일품인 일명 ‘다방 커피’나 계란 노른자 동동 띄운 따끈한 쌍화차 한 잔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감상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다방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세련된 분위기와 다양한 서브메뉴로 젊은 층의 발길을 이끌고, 가정이나 사무실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믹스커피의 보급으로 중장년층은 굳이 다방을 찾지 않아도 손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여기에 금연구역 여파로 명동과 충무로를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다방들마저도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담배연기와 함께 사라지다, '미스김 다방' 사진 = KBS 드라마 '경성스캔들' 캡쳐

기분을 파는 다방


암울한 현실을 등지고 낭만에 취해 살던 식민지 조선의 멋쟁이 모던걸, 모던보이들은 차를 마시는 것보다는 ‘차를 마시는 기분’을 즐겼다고 한다. 현민이 쓴 ‘현대적 다방이란’(「조광」, 1938.6) 글에 따르면 당시 다방은 ‘차를 파는 다방’과 ‘차를 마시는 기분을 파는 다방’으로 나뉘었는데, 차만 파는 가게는 다방으로 치지 않는 것이 당대의 트렌드였다. 그렇다면 차를 마시는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나 배우, 기자나 가수 등 예술인들이 드나들고, 클래식이 흘러나오며 비싼 고급 커피가 나오는 분위기 속에 종로와 명동의 유명 다방은 문화인의 아지트이자 청춘남녀의 데이트장소로 각광받았다고 하니 요즘의 핫플레이스를 찾는 힙스터 문화에 견주어 볼 수 있다.


담배연기와 함께 사라지다, '미스김 다방' 사진 = EBS 드라마 '명동백작' 캡쳐



작가의 창작 산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장소는 명동이 유일했다. 도시 복구계획을 통해 국립극장이 명동에 들어서면서 이를 중심으로 술집과 다방이 빠르게 생겨났고, 가난과 절망에 빠져있던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이곳을 접수했다. 과제와 PT에 허우적대는 요즘의 청춘들이 학교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고민하는 모습만큼이나 명동의 다방에서 파이프를 문 작가가 자욱한 연기 속에 원고지에 글을 쓰는 모습은 흔한 풍경 중 하나였다. 이 시절 다방은 폐허 속에서 낭만을 노래하고, 시대를 응시하는 작품을 토해내는 창작 산실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독재정권 아래 은밀한 담론 장


엄혹한 개발독재시대의 다방은 공식적인 자리에선 미처 말할 수 없었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는 비밀스런 담론 장이었다. 장준하는 사상계에서 지식인을 두고 “종일 다방에서 담배와 더불어 소일하고 해가 지면 주효(酒肴)에 만취하여 대언장어(大言丈語)를 일삼는 자”로 규정했다. 으슥한 지하다방에 자욱한 연기를 헤치고 자리에 앉으면 언론에는 나오지 않는 숨은 사건을 공유하는 목소리가 빛이 닿지 않는 공간을 채웠다. 그림자와 같은 여론이 당시 지하다방의 어둠 속에 낮게 가라앉고 있었다.


우울한 시대를 견뎌낸 소시민들은 다방에 앉아 담배와 차를 벗 삼아 세상사 걱정과 시름을 덜어내곤 했다. 그들이 찾던 다방은 이제 도시의 구석으로 밀리고, 담배도 피울 수 없는 다방 아닌 다방이 돼버렸지만 힘든 시절을 위무하던 다방의 정취를 잊지 못한 손님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다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방 앞 골목 귀퉁이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노신사들의 표정에서 오랜 세월 속의 풍파를 읽는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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