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소비여건은 괜찮다. 금리는 낮고, 물가상승률은 0%대다. 대출도 받을 만큼 받았다. 지난해 가계대출 총 증가규모는 78조원이다. 2013년에 비해 3.4배, 2014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그러나 주거비와 교육비는 줄지 않는다. 소주, 라면, 과자 등 생필품 가격도 들썩인다. 공공서비스 요금은 6년 새 최고 수준이다. 이제 소비는 절벽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2월3일 유일호 부총리는 1분기 경기보강대책(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작품'이다. 모든 카드를 망라했다. 핵심은 승용차의 개별소비세 인하다. 고육지책이다.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전임 최경환 부총리의 경기부양 드라마가 '응답하라 아파트'였다면, 유일호 부총리는 '응답하라 승용차'다. 전임 부총리의 경기부양책은 반짝 효과가 났다. 그러나 결과는 가혹했다. 전세난은 심화됐고, 월세는 연일 고공행진이며, 미분양 아파트는 속출하고 있다. 승용차는 어떨까? 아무리 불러도 승용차는 '응답하지 않으리라.' 소나타(최소 가격은 2200만원)의 경우 90여만원 가격이 내렸다. 승용차는 고가품이다. 계획을 세워 소비하는 제품이다. 근데 90만원 인하됐다고 계획을 바꾸기 어렵다. 그리고 차를 사려면 보통 대출이 필요하다. 가계대출은 이미 다 찼다.
기본적으로 경기부양은 통화 공급과 순환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헬리콥터를 타고 돈을 뿌릴 수 없다. 적절한 수단이 필요하다.
옛날엔 토목사업이 효과적이었다. 토목사업은 일용직 고용을 늘린다. 매일 현찰을 지급한다. 일용직은 임금으로 바로 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통화 순환도 빨랐다. 요즘은 이게 통하지 않는다. 토목(건설)사업은 경기부양보다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기술발달로 노동투입이 많지 않다. 사업기간도 길다. 임기가 있는 대통령이 선택하기엔 호흡이 긴 정책이다.
대신 요즘은 아파트와 승용차가 단골 경기부양책이다. 산업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한 채 팔리면, 건설사는 물론 부동산 중개소,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파급효과가 넓게 퍼진다. 국민 5명 중 1명이 주택ㆍ건설업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승용차 한 대가 팔리면 전자, 전기, 금속, 기계, 섬유, 고무는 물론 보험, 물류 등 서비스업까지 효과가 미친다.
그러나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통화 공급 또는 소득이 늘지 않았다. 소득이 늘었다 해도 주거비와 교육비 부담이 워낙 크다. 그래서 아파트와 승용차 소비는 대출에 의존해야 한다. 소비심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다. 그러니까 아파트와 승용차는 산업화 시대에 작동하는 경기부양책이다. '응답하라 1988'처럼 말이다. 포니를 사고 온 가족이 드라이브하던 시대.
그렇다면 기업을 통한 경기부양을 고려해봄 직하다. 중소기업이 그 대상이라면 효과도 클 것이다. 국가 전체 종사자의 87%가 중소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가령, 중소기업 제품만을 대상으로 한 블랙프라이데이를 실시하는 것이다. 중소기업이 만든 TV, 컴퓨터 모니터, 화장품, 주방용품, 침구류, 귀금속 등등. 일주일 내내 홈쇼핑, 전자상거래, 면세점 등 가능한 한 모두 수단을 동원해서 말이다. 여기다 소득공제까지 적용하면 그 효과는 웬만한 재정투입보다 클 것이다.
아파트와 승용차는 대기업 제품이다. 소비가 발생하면 대기업, 중소기업, 중소기업 근로자, 주변 자영업자에게 소득분배가 이어진다.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중소기업의 매출 확대는 이러한 분배 과정을 짧고 단순하게 만들 것이다. 통화 순환은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할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여건도 달라졌다. 환경도 변했다. 복고는 드라마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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