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안전 문제 심각...역사 40%가 비상시 대피 시간 기준 미달 등...서울시 재정 부족에 쩔쩔매지만 정부는 뒷짐만...전문가 "예산 투입 시급"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6일 오후 7시35분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에서 열차가 멈춰 섰다. 18년이나 된 부품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구조작업은 커녕 안내 방송도 되지 않았다. 승객들은 공포에 떨면서 수동으로 문을 열고 나가 컴컴한 선로 500여 미터를 걸어서 대피해야 했다.
어느새 '흔해진' 서울 지하철의 풍경이다. 이달 들어 4호선에서만 3번째다. 서울지하철은 잦은 고장 외에도 차량ㆍ시설 노후화와 관리부실, 비상시 대피 불가능 등 총체적 문제가 노출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돈'이다. 서울시는 지하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재정 부족을 호소하고,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의 땅 밑에서 시민의 안전과 돈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8일 시에 따르면 2011년~2015년 동안 서울 지하철의 운행 중단 사고는 55건 발생했다. 서울메트로 관할 지하철 1∼4호선에서 35건, 서울도시철도 관할 5~8호선에서 20건이 각각 일어났다. 최근 들어서는 한 달에 3~4회 꼴로 발생하는 등 급증 추세다. 원인을 보면 부품 고장, 선로 균열 등 시설 장비의 문제가 64%, 화재나 승객 부주의 24%, 기관사 운행 잘못 10% 등이다.
특히 전동차와 각종 부품 및 설비 노후화는 심각하다. 지하철 1~4호선 전동차의 57%, 5~8호선 전동차 중 51% 가량이 20년을 넘긴 노후 차량이다. 시설 분야도 마찬가지다. 서울메트로의 철로 436km 중 215km가 교체 대상이다. 서울메트로의 역과 철로엔 20~30년된 '환기동력제어반', '화재수신기', '차단기' 등 노후 장비들이 수두룩 하다. 일본의 경우 15년 지난 차량ㆍ부품은 의무적으로 교체하지만 우리는 2014년 법 개정으로 아예 제한 수명이 없어졌다. 점검 후 이상이 없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화재ㆍ폭발 등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피 시간이 너무 길어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역들도 많다. 지하철 276개 역 중 109개 역(39.5%)이 재난 발생시 최소 4~6분으로 설정된 비상시 대피시간 기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노선 별로는 1~4호선 100개 역 중 34개(34%), 5~8호선 145개 역 중 74개(51%), 9호선 31개 역 중 1개(3.2%)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2002년 정부 지침이 마련되기 전에 설계된 곳으로 대피하려면 10~20분이나 걸린다. 화재ㆍ폭발ㆍ가스누출 등의 사고가 났을 때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지켜질 수 없는 곳들이다.
문제는 재정 문제로 이같은 위험한 현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 5월 왕십리 지하철 추돌 사고 후 2022년까지 총 1조8900여억원을 들여 노후 차량ㆍ부품을 교체하고 시설을 개선하겠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연간 6000억원대의 지하철 적자로 인해 2015년 1181억원, 올해 1352억원의 예산을 편성하는데 그쳤다.
비상대피시간을 줄이기 위한 공사도 필요하지만 서울메트로 3700억원, 서울도시철도공사 7000억원 등 약 1조원대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시는 각 지하철역 별 시설 개선 공사나 도시재정비 사업 등과 연계해 비상계단을 확보하고 통로를 확장한다는 방침이나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길동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박사는 "현재 서울 지하철의 설비나 차량들의 평균 연령이 20년을 다 넘었는데 이런 상태로는 곧 더 이상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계점에 도달할 것"이라며 "정부,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해 차량, 교량, 터널, 전력설비, 신호체계 등을 리모델링하는 한편 유지보수 기술과 인력의 수준을 높여 정비ㆍ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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