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한 사업에 '재기회' 부여하는 재계
무리한 사업철수 대신 새로운 시각으로 방향 바꿔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손선희 기자] 미운오리새끼가 백조로 변신했다. 벼랑 끝으로 몰렸다가 극적으로 부활했다. 매각설이 돌 정도로 부진했던 사업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연말 재계의 구조조정이 낳은 드라마틱한 '세컨드찬스'다.
삼성전자는 최근 연말 조직개편에서 오디오와 PC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오디오는 당초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 부문 내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서 소규모로 운영됐다. 실적이 좋지 않아 매각설이 무성했다. 징후도 있었다. 올 초 삼성은 VD사업부의 경영 진단을 실시한 후 오디오 사업 방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지만 다시 기회를 주자는 '세컨드찬스'로 가닥이 잡혔다. VD사업부 내에 AV(오디오비디오) 사업팀을 신설해 오디오 사업을 전담시켰다. 해외 연구조직에도 오디오 팀을 신설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SRA(삼성리서치아메리카) 소속 오디오 랩(Lab) 팀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PC사업도 극적으로 부활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조직 개편에서 PC사업팀을 신설하면서 흩어져있던 인력들을 한데 모았다. 제대로 역량을 집중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PC사업은 삼성전자의 '미운오리새끼'로 불리며 오랫동안 철수설이 나돌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으로 오히려 재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삼성전자가 시장의 예상과 달리 PC와 오디오에 힘을 실어준 것은 B2B(기업 간 거래)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시장에서 거래선을 유지하려면 PC와 오디오 등 다양한 상품군을 갖추는 것이 유리하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서피스북과 구글 크롬캐스트처럼 PC와 오디오가 부각되는 최근의 시장 흐름은 PC와 오디오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다"며 "삼성도 그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 미운오리새끼를 백조로 탈바꿈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대형 세단 '아슬란'의 신모델을 내놓으며 단종설을 일축했다.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고 디자인도 차별화되지 않아 일각에서는 더 이상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성능을 높이면서 가격을 낮춘 아슬란 신모델로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카드사들의 매각설도 마찬가지다. 현대카드와 삼성카드는 실체적인 진실과는 무관하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매각설에 휘말렸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금융분야를 지속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매각설을 잠재우면서 자동차 사업과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삼성카드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며 제기됐던 삼성카드 매각설도 실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도 최근 기자들을 만나 "삼성카드 매각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적자 행진을 이어가며 부진했던 삼성중공업도 한때 매각설이 나돌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달 거제조선소를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며 힘을 실어줬다.
재계의 세컨드찬스는 위축된 사업에 다시 기회를 줌으로써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공격적인 의미도 있지만 마땅히 매각할 상황이 아니어서 우선은 품고 가자는 방어적인 의미도 있다. 인수합병(M&A) 시장이 위축된 상황이어서 매각을 진행했다가는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고, 그 후폭풍은 조직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매각을 진행한다고 해서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며 "오히려 기존 사업을 다르게 보고 방향을 찾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