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불과 6개월 전,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톱' 공격수는 멸종될 것처럼 보였다. 4-2-3-1 포메이션의 대세로 톱의 숫자는 줄었고 그나마 있는 원톱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원톱들은 자신의 자리를 비우는 일이 보통이었다. 제로톱도 이 과정에서 나타났다.
혜성처럼 등장한 제이미 바디(28·레스터시티)의 가치는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서 특별하다. 바디는 일반적인 원톱 혹은 제로톱 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러너톱(Runner+Top)'이다. 그는 일반적인 톱 공격수들처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달리면서 직접 해결한다.
6일(한국시간) 바디가 속한 레스터시티는 영국 리버티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2016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에서 스완지시티를 3-0으로 꺾고 리그 선두로 올라섰다.
바디는 아쉽게 12경기 연속골 행진에 실패했다. 골만 없었을 뿐 바디는 역시 바디였다. 바디 때문에 스완지 수비진은 고생을 했다. 그가 돌아서 뛰는 움직임을 방해하려 했고 그를 신경 쓰느라 다른 공격수들을 놓치는 장면들도 나왔다.
스완지전도 그랬지만 바디는 전형적인 러너였다. 뛰어야 빛나는 최전방 공격수다. 바디의 강점은 크게 두 가지다. 후방에서 띄워주는 로빙패스를 잡아 놓는 트래핑과 치고 달리는 스피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골까지 잘 넣으니 바디와 같은 유형 중에서는 완성형에 가깝다.
▶ '러너톱'이 있다면 바디는 완성형
바디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날개였다. 측면에서 스피드를 붙여 뛰는 드리블이 주 무기였다. 이후에는 골문까지 더 돌파를 해도 되고 패스를 해도 됐다. 하지만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4)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달라졌다. 올 시즌 바디는 최전방으로 자리를 바꿔서 빛을 냈다. 15경기에서 벌써 14골을 터트려 득점 선두에 올랐다.
최전방 공격수 바디가 색다른 이유는 그가 '러너'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최전방 공격수는 공중 볼을 장악하거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고 패스를 받고 다시 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바디는 달리는 러너다. 뛰어서 기회를 만드는 데 능하다.
그동안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다. 최전방 공격수를 빠른 선수로 놓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이 기존의 공격수들과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 10월동안 아스날에서 가장 앞에 섰던 윙어 시오 월콧(26) 등이 대표적이었다. 라니에리 감독은 이러한 틀을 깼다. 바디는 가장 앞에 서지만 플레이스타일을 버리지 않게 했다. 여기에서 차이가 생겼다. 바디는 가장 앞에 서서 순간 시속 35.44km로 리그 내 최고의 스피드를 보여주며 골망을 갈랐다. 바디가 계속해서 성공하면 사라질 것으로 보였던 원톱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도 있다.
▶ 바디가 이겨내야 할 숙제와 고비
바디의 득점은 대부분 달리는 과정에서 나왔다. 특히 속공에 강하다. 공격이 전환되는 상황에서 바디는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페널티박스 안으로 들어가 있고 공이 오면 골을 넣었다.
한 가지 우려가 있다면 지공 상황에서가 문제다. 공격이 느리게 진행될 때는 바디에게 공간적인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공격수는 미드필더보다 상대 골문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상대가 수비라인을 두텁게 세우면 바디가 뛸 공간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장면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중상위권인 레스터를 상대로 걸어 잠그는 프리미어리그 클럽은 없다. 매 경기 한두 번의 역습 찬스는 있었고 그때마다 바디는 실력을 발휘했다. 레스터와 바디를 견제하는 다른 팀 수비수들과 감독들도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곧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
바디 입장에서는 더욱 강해질 견제를 벗어 날 방법이 필요하다. 주변의 지원도 중요하다. 은골로 캉테(24) 등이 바디를 향해 정확히 띄워주는 패스가 위력적인데 더욱 날을 세울 필요도 있다. 리그에서 10골을 넣은 리야드 마레즈(24)가 함께 뛰는 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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