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일 년 내내 수확의 기쁨을 맛보고 있는데, 가을에는 특히 그 기쁨이 크고 풍성하다. 여름철에는 주로 잎채소들이 나서 바로 먹어야 하지만 가을철에는 저장해두어도 좋은 뿌리채소와 열매들이 많고 가을바람과 햇볕에 말려 두기도 좋으니 긴 겨울을 위해 이것저것 마련하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이름만 들어도 절로 달콤한 맛이 떠오르는 고구마는 예나 지금이나 겨울의 인기 간식이다. 어릴 적 겨울방학 때 찾은 할머니 댁에서 먹던 유일한 간식은 ‘빼때기’다. 고구마를 쪄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햇볕에 말린 것이다. 고구마는 추운 곳에 두면 냉해를 입기 쉬우니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겨울까지 보관하기가 여의치 않아 할머니는 말려두었다가 간식으로 먹거나 때로는 끓여서 죽으로 드셨다. 먹거리가 넉넉지 않았던 예전에 고구마는 긴 겨울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나 요즘은 다이어트식으로 인기가 있으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건강과 웰빙을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는 새로운 고구마 상품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형태의 고구마 가공품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할머니들의 지혜가 그대로 담긴 ‘고구마 말랭이’다. 특별한 맛을 가미하지 않아도 말리는 과정에서 단맛이 증가하니 맛과 영양 모두 나무랄 데 없는 ‘건강 간식’이다. 이를 알아차린 글로벌 커피 브랜드인 별다방에서는 커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포장 판매하고 있으니 고구마를 먹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고구마의 풍부한 식이섬유는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고 배변을 촉진시키지만 장내 미생물의 발효로 배에 가스가 쉽게 찰 수 있으니 동치미나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이 좋다. 온 가족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모여 앉아 동치미 국물 마시며 고구마를 먹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다양한 형태의 고구마가 온 가족에게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주전부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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