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한국 반도체는 새로운 성장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외부 여건은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최근 상황은 반도체 업체들의 어깨를 잔뜩 움츠리게 만든다.
정부는 200억원에 달하는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LED 산업의 내년 신규 연구개발(R&D)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반도체 예산 자체가 사라질 위기다.
시민단체들은 반도체 산업이 위험산업, 반도체 공장은 죽음의 공장이라고 선전중이다. 무려 7년간 매일같이 시위를 벌이고 삼성전자에 1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출연해 공익 법인을 설립하라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시민들의 오해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반도체 단지를 짓고 있는 평택 지역 주민들은 생산도 하지 않는 불산 제조업체라며 반대 시위를 했고 지자체 역시 전력 공급에 필요한 철탑을 짓지 못하게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반도체연구소장 후보를 못 찾고 있다. 산학과제도 크게 줄어들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는 학생을 취업시키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이 효자사업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면서 "시민단체들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여도 또 다른 사안을 요구하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오해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에서 노숙시위중인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인권지킴이)은 삼성전자에서 수백명의 직업병 환자가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올림측의 피해자 명단에는 삼성전자와 무관한 계열사들까지 포함돼 있다. 상당수가 전화를 통한 제보고 직업병과 별 연관이 없는 질병들도 포함돼 있다. 화학물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희귀병이 발생하면 모두 직업병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당초 반올림이 집계한 피해자는 33명이었지만 지금은 244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직업병으로 분류한 병명에는 우울증 환자까지 포함돼 있다. 상당수 피해자는 전화 제보를 통해 추가돼 실제 피해 사례가 있었는지도 미지수다.
반올림이 주장하는 사망자수는 지난 2014년 10월 73명이었지만 올해 2월에는 69명으로 줄었다. 사망자 숫자도 들쭉날쭉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반올림은 에틸렌글리콜이라는 화학물질을 놓고 독성이 강해 미국에서는 사용하지 않지만 삼성전자는 사용중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지적한 화학물질은 에틸렌글리콜에테르다. 두 가지 화학물질은 전혀 다르다.
내용도 다르다.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주요 반도체, LCD 업체들은 에틸렌글리콜에테르의 사용을 자체적으로 금하고 있다.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화학물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시민들에게 이 같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하다.
현재 전세계 반도체 생산라인은 총 580여개에 달한다. 이중 국내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페어차일드 등 6개사 30여개 생산라인이 있다. 하지만 유독 삼성전자의 국내 반도체 생산라인만 놓고 반올림 등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가족대책위(가대위)와 삼성전자, 반올림 사이의 의견 중재를 맡아온 조정위원회는 수개월전 삼성전자가 초기 기금 1000억원과 매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의 0.05%를 출연해 사단법인을 설립할 것을 권고했다. 이 사단법인을 통해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활동하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장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단법인 설립은 삼성전자가 조정과정에서 수차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권고안에 포함됐다. 조정위원회 위원들은 권고안을 내 놓은 이후 각자 소속된 시민단체를 통해 삼성전자를 비난하고 권고안을 받아들이라며 압력을 행사한 바 있다.
조정위원회가 3개 주체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반올림측 의견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는데 그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민단체들은 투쟁을 위해 잘못된 사실을 유포하면서 기간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까지 자사 및 협력사 피해자까지 보상하겠다고 나선 만큼 공익법인 설립 등의 무리한 요구를 더이상 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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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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