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대전) 정일웅 기자] 경찰의 부적절한 언사에 항의하는 행동은 ‘공무집행방해’가 될까, 그렇지 않을까. 술에 취해 순찰차의 진행을 가로막은 30대 남성이 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의 빌미가 된 것은 경찰의 ‘반말’과 남성의 항의에 따른 ‘현행범 체포’ 시도. 법원은 사건의 전후관계를 따졌을 때 경찰의 고압적 행태에 따른 남성의 횡포(?)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 중 경찰은 사건 당시 현장상황을 담은 CCTV 혹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제출하지 않은 터다.
대전지법 형사8단독(이혜린 판사)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38)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9월 대전 서구 둔산동 소재의 한 도로에서 폭력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 중이던 순찰차의 진행을 가로막은 혐의를 받았다.
술에 취해 도로 중앙선을 따라 걷는 A씨에게 순찰차가 다가와 경적을 울리고 ‘비켜’라고 반말을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당시 그는 순찰차에서 반말(비켜)을 하는 경찰관을 향해 욕설을 하며 차량의 진행을 막았다. 또 상의를 벗은 채 몸에 물을 뿌리고 양 손으로 차량 보닛을 내리치는 등 20여분간 난동을 피우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의 이 같은 행동을 공무집행방해가 아닌 ‘정당방위’로 판단했다. 표면적으론 취객의 행패로 볼 수 있었던 이 사건 이면의 속사정을 함께 고려하면서다.
재판부는 우선 A씨를 상대로 한 경찰의 부적법한 현행범 체포 과정을 문제 삼았다. 사건의 전후관계를 따졌을 때 경찰이 먼저 A씨에게 반말을 했고 이에 항의하는 정씨가 차량을 가로막으며 진행을 방해하자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며 수갑을 꺼내들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경찰의 반말이 인(因)이 되고 이에 화가 난 A씨가 수갑을 보고 보닛을 내리치게 된 행동이 과(果)가 돼 사건의 전말이 됐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요지다.
특히 경찰이 재판과정에서 사건 당시의 주변 CCTV 또는 순찰차에 설치된 블랙박스 등 정황증거를 제출하지 않은 점도 판결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경찰이 주장한 ‘공무집행방해’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를 내보이지 못했다는 맥락에서다.
재판부는 “도로가에 서서 순찰차의 진행을 막았다는 이유만으로 피고인의 행태를 공무집행방해죄에서 말하는 폭행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같은 이유로 부적법한 현행범 체포에 항의하는 성격으로 상의를 벗고 보닛을 치는 등의 행위를 공무방해로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공무집행방해’는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함으로써 직무 집행을 방해하는 것을 말하며 직무의 집행 적법성에 대해선 학설이 갈린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권한 있는 공무원이 법령이 정하는 형식과 요건에 따라서 행하는 적법한 직무행위에 한해 공무집행 방해가 성립한다는 적극설이 통설로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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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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