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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고향집 그려 동생에게…'눈물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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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공동취재단·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21일 오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두 번째 단체상봉에서 북측 최고령자 리흥종(88) 할아버지는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딸 이정숙(68) 씨가 "아빠, 지금도 그때 부르던 기억나요? 노래하실 수 있어요?"라고 하자 리 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젊은 시절 자주 부르던 '백마강' 곡조를 뽑았다. 딸은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래가 끝나자 딸이 말했다. "아빠,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하시네!" 추억에 잠긴 딸은 "엄마가 나 3∼4살 때 나를 팔에 놓고 노래를 불러주셨어. 아빠 생각나면 나를 안고서 이 노래를 했다고. 내가 아빠한테 지금 그 노래 불러줄까? 여기 가만히 귀에다 대고 해 드릴께, 지금." 하고 말했다.


그러나 리 할아버지는 "북에서는 그 노래하면 안 돼" 하며 거절했고, 딸은 노래부르기를 포기했다. 곡명은 끝내 알 수 없었다.

또 북측 상봉단인 리한식(87) 할아버지는 흰 종이에 연필로 어머니 권오희(92) 할머니와 65년 전 함께 살았던 경북 예천의 초가집을 그렸다.


리 할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측 이복동생 이종인(55) 씨가 "형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리 할아버지는 목에 걸었던 이름표를 벗어 자 대신 쓰면서 한획 한획 정성스레 초가집을 그려나갔다. 온 정신을 집중하며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권 할머니는 가만히 지켜봤다.


40분 만에 초가집의 기둥과 담벼락, 초가의 음영, 마루의 무늬, 댓돌까지 생생하게 그려낸 리 할아버지의 그림에 동생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림 아래에는 '상봉의 뜻 깊은 시각에 그린 이 그림을 종인 동생에게 선물한다. 2015.10.21'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종인 씨는 "두 시간이 참 아까운 시간이지만, 형님의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으니까…." 하며 눈물을 훔쳤다.


안춘란(81) 할머니의 남측 조카는 테이블 위의 북한 과자를 두고 "간식도 허투루 먹을 수 없다. 남겨서 가지고 가려고 한다"며 "이모님이 여기서 드시는 과자니까 돌아가서 이모님 생각하면서 먹을 거다"라고 말했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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