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국방부에 권고.."군 문화 개선 기대"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축하가 수근거림으로 바뀌는 데는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육군 모 연대 본부중대에서 근무하던 A 상사는 사망 6개월여 전만 해도 인정 받는 군인이었다. 상급 부대 행정보급관이라는 중요 보직을 맡으면서 군 생활에 꽃이 활짝 피는가 싶었다. 군 생활은 물론 인생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꿈에도 몰랐다.
행정보급관을 맡은 뒤 연대장(대령) 눈 밖에 나면서 지옥 생활은 시작됐다. 연대장은 A 상사를 불러 수시로 지적하며 '무능력자'로 낙인 찍었다. A 상사는 부대 전입 3개월 만에 경고장까지 받았다.
A 상사는 20년의 군 생활에서 전례없는 치욕을 맛보면서도 명예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꾹꾹 참았다. 연대장의 압박이 심해지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희망한 타 부대 전출도 여의치 않았다. 짧은 기간 A 상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자존감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수도 급격히 줄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A 상사의 타 부대 전출이 결정됐다. 새출발이 가능할 것 같았다. 전출일에 연대장은 A 상사를 제외하고 부하 간부 전원을 소집했다. 그리고는 "A 상사는 이전부터 군 복무 부적응자였고 새로 전입 온 이 부대에서도 적응을 못해 다른 부대로 가려고 하는 등 부대 단결력을 저하시킨다"고 깎아내렸다.
공개석상에서 나온 부대 지휘관 발언은 파장이 컸다. 당연히 A 상사 귀에도 이 소식이 들렸다. "연대장 말이 사실이야? 그래서 옮겨간 거구만." "A 상사가 그렇게 개차반이었어?" 동료들의 뒷담화가 A 상사를 더욱 괴롭혔다.
급기야 A 상사는 우울증에 빠졌다. 정신과 치료도 소용없고 군 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쯤 A 상사는 자해로 목숨을 잃었다.
군은 A 상사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연대장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하는 데 그쳤다. 연대장이 A 상사 명예를 훼손한 건 맞지만,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봤다.
유족들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전했다. 권익위는 유족들의 고충 민원을 받아 검토한 뒤 15일 국방부에 "상관의 명예훼손으로 인한 우울증이라면 군 복무와 관련 있다"면서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A상사가 ▲20년 동안 문제없이 군 복무를 해오며 지휘관과 동료로부터 훌륭한 부사관으로 인정받아온 점 ▲상급 부대 보직 직후부터 업무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2회에 걸쳐 다른 부대로 전출하고자 했으나 모두 좌절된 점 ▲이 과정에서 지휘관이 공개적으로 A 상사의 명예를 훼손한 점 ▲군인에게 명예는 다른 직종에 비해 더 중시되는 가치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권익위 권고에 따라 국방부는 A 상사의 순직 여부를 재심사할 예정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통상 국방부는 이와 유사한 사안에 대해 권익위 조사 결과와 권고를 존중해왔기 때문에 A 상사의 순직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을 계기로 군 특유의 수직적 구조 속에서 간부들이 고통 받는 상황이 조금이나마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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