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5일(현지시간)타결되면서 세계 최대 시장 미국에서 한일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일본이 이미 엔저(엔화약세)공습으로 미국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여온 상황에서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TPP는 일본에 날개를 달아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우리정부와 기업은 TPP 체결 이후 미국시장에서 일본과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것에 대비해 산업별 대응방안과 고부가가치 전략, FTA 활용도 제고 등 민ㆍ관 공동의 대책마련과 함께 TPP 참여논의도 구체화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6일 KOTRA가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미(對美) 수출 산업의 경쟁구도를 분석한 결과, 자동차, 기계, 전기기기 등 경합도가 높은 분야일수록 일본 제품의 경쟁력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3월 한ㆍ미 FTA 발효 이후 미국 시장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전해온 우리 기업들의 수출 전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TPP 체결로 일본 제품에 대한 관세가 인하 혹은 철폐될 경우, 일본 기업들의 수출 환경은 더욱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일본의 대미 수출품 중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품목의 비중은 58%로, 이미 엔저로 득을 보고 있는 일본이 TPP로 인한 관세 효과까지 누리게 되면 경쟁관계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엔저 장기화로 거둔 수익을 투자로 전환하며 수출경쟁력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어, TPP 타결 이후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가장 경합도가 높은 완성차의 경우 엔저효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지만 TPP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미 FTA에 따라 내년부터 무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고, 양국의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증가하며 관세의 영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기업들은 비용절감 노력과 함께, 장기적으로 무인자동차 등 신기술과 관련하여 미국 업체와 적극적인 협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는 TPP와 엔저의 이중고가 겹치며 우리 기업들의 큰 피해가 예상된다. 완성차 기업과의 미국 시장 동반진출 전략을 모색하거나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제고하는 등 중장기적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기계류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로, TPP가 체결되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더욱 위협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 내 산업 및 지역별 수요에 기반한 맞춤형 수출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의 강세가 뚜렷한 전자ㆍ가전 분야에서는 무관세 품목이 많아 TPP 영향이 제한적이나, 프리미엄 가전에서 일본제품과 경쟁이 치열해질 우려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브랜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 및 생산효율화 전략을 추진하는 등 일본 기업들의 가격인하 움직임에 대비해야 한다.
이밖에도 철강 및 철강제품의 경우 일본과의 경합도가 낮아 TPP 영향은 제한적이며, 오히려 반덤핑 제소 문제가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석유화학에서는 유가하락과 수요 감소로 시장 자체가 어려운 만큼, 경쟁보다는 협업으로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한편, 섬유산업은 주력 수출상품이 겹치지 않아 피해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TPP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우리 정부도 이제 TPP 가입 여부에 대해 결단해야 할 시점에 왔다. TPP는 우리나라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4%(3553억 달러, 2014년 기준)에 달하는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무역업계도 그동안 우리나라의 TPP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다자 FTA가 양자 FTA를 뛰어 넘는 경제효과를 가져오며, TPP 중심의 서플라이 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수출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가 지난 5월 762개 무역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2.2%가 TPP 참여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모든 업종의 TPP 참여에 대한 찬성 비중이 50%를 초과했으며 농림수산물(69.1%), 전자전기(67.7%), 생활용품(67.2%) 등의 찬성비중이 높았다. 농림수산물 분야가 특히 찬성 비중이 높은 이유는 우리의 최대 농림수산물 수출국인 일본의 시장 개방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 및 부품(52.3%) 기업이 TPP 참여에 대한 찬성 비중이 가장 낮았으며 정밀기계(53.2%)와 기계(55.4%)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들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열위에 있는 분야가 있어 찬성 비중이 낮은 것으로 풀이됐다.
무역협회는 "우리나라는 TPP에 후발주자로 참여하는 만큼 향후 우리 기업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특히 제조업 강국인 일본과의 FTA 협상에도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라면서 "무역업계도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속에 구체적인 대응 전략 마련에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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