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청년희망펀드 아이디어의 즉흥성, 전 장병 특별휴가 '하사'라는 단어의 부적절성 등 지엽적인 비판들을 뒤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유엔(UN)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다자(多者)외교 무대의 특성상 눈에 띄는 빅이벤트는 없다. 미국 대통령과 1대 1 회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국 국가주석이나 러시아 대통령과의 면담도 잡혀있지 않다.
그나마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총리와의 우발적 조우, 그리고 두 정상이 어떤 말들을 '짧게' 주고받았으며 그 전의 비슷한 사례와 비교해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는 다소 '가십거리'에 가까운 소식 정도일 것이다. 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 '대권 도전'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하는 또 다른 지엽적 이슈가 추석 연휴 헤드라인을 장식할 여지도 있다.
치열함이 사라진 외교 이벤트엔 화려한 대접과 우아한 한복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을 지지율 60% 돌파를 위한 기회로 삼을 유인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몇 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는지 자료로 만들어 배포하는 건 그나마 점잖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기립박수의 많고 적음이 우리 외교의 득실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수사가 "한국은 중국에 경도돼 있다"는 동맹국들의 우려를 해소해주지도 않는다. 중국경도론은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관 이후 더 강해졌고, 유엔총회는 전승절 후 첫 다자외교 무대다. 한반도 문제에 한 마디씩 할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주변국 정상들은 '전승절에 참석한 유일한 미국 동맹국 정상'인 박 대통령을 향해 "자, 뭐라도 이야기해보세요"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리는 한반도 안보 관련 표면적 움직임은 29일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가 거의 유일하다. 여기서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밑그림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군사굴기와 북한의 핵도발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3각공조의 중요성도 거론될 것이다.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이 균형 잡힌 중재자로서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 받는 것은 박근혜정부 안보정책의 성패를 가늠할 중대 기점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공언한대로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근본적 해법으로써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그 논리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흡수통일 의지를 국제사회에 대놓고 광고하는 것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자극 받은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장거리미사일 발사 혹은 핵실험과 같은 도발을 감행한다면, 그로부터 5일후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동력을 얻지 못할지 모른다.
이번 유엔총회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우리의 장기적 행보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비교해 그 중요성이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 때보다 세심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과 연설문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하고 녹여내야 한다. 그 일의 패착은 기립박수 횟수와 한복에 대한 찬사로는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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