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 23일 새벽 송환…극비리에 송환 작전, 한미 사법공조 결과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법무부가 16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태원 살인사건' 해결을 위한 '007작전'에 성공했다.
23일 새벽 4시2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발 대한항공편이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항공기에는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36)이 타고 있었다. 패터슨(사건 당시 17세)은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조중필(당시 22세)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패터슨은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주한 지 16년 만에 한국으로 송환됐다. 이번 송환은 한국 법무부와 미국 사법 당국의 탄탄한 공조를 통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국민적인 분노를 일으켰던 사건이다.
이에 법무부는 1997년 4월,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한 작전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범죄 용의자라고 해도 미국인을 국내로 송환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법무부는 2009년 10월 패터슨 소재를 확인했다.
즉시 미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패터슨은 2011년 5월 미국에서 체포돼 범죄인 인도 재판에 넘겨졌다. 미국 법원은 2012년 10월 범죄인 인도 허가를 결정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패터슨은 인신보호 청원을 제기했다. 법적인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송환을 저지하고 지연하려는 목적이었다.
패터슨의 청원은 지난해 6월 1심, 올해 5월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7월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패터슨이 항소심 패배 이후 2개월 이내에 범죄인 인도신청에 대한 집행정지신청을 다시 할 경우 송환은 또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기한이 만료될 때까지 집행정지신청을 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극비리에 송환 작전을 준비했다.
이미 미국 워싱턴 DC와 서울을 여러 차례 오가며 미국 법무부와 실무준비를 진행한 경험이 있다. 법무부는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미국 당국을 설득하는 데 공을 들였다. 결국 미국 국무부는 19일 오전(한국 시각) "패터슨을 인도하겠다"고 한국 법무부에 통보했다. 한미 당국의 사법 공조 역사상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순간이다.
패터슨은 그때까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미국 당국이 송환 문서에 사인한 뒤 이를 통보하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23일 새벽 귀국한 패터슨은 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난 후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충격이다. 난 지금 (이 분위기에) 압도돼 있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한국 법원의 재판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16년만의 패터슨 송환에 대해 "구천을 떠도는 피해자의 외로운 넋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미국 당국을 설득했다"면서 "이번 송환은 한·미 형사사법 당국 간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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