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기획-W리더십이 경제 살린다 ②] 야근·회식 잦은 기업문화와 사회인식…경력유지 힘들어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육아휴직 후 복직 2년차인 박주영(33세)는 퇴근 시간이 4시로 다른 직장들 보다 이른 편이지만 5시가 넘으면 혼자 어린이집에 남아 있는 아이와 빠른 하원을 재촉하는 선생님 눈치에 언제나 '칼퇴근'을 고수한다. 일찍 등원하고 늦게 하원할 수 밖에 없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를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어린이집 얘기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을 졸인다. 늘 칼퇴근 하는 박 씨는 회사 내부에서 간 큰 워킹맘으로 통한다.
#. 대형 은행에 다니는 정미연(34세)씨는 최근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회사를 그만 둬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다. 증권사에 다니는 남편은 업무 특성상 야근과 회식이 잦아 집에 들어오면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처음에는 두 아이를 돌보미에 맡기고서라도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경력을 유지하고 싶다는 뜻을 남편에게 밝혔다. 그러나 한 달에 200만원 넘게 들어가는 두 아이 돌보미 비용에 여성 승진의 높은 벽을 생각하면 차라리 회사를 그만 두고 육아에 전념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남편의 주장에 제대로 반기 한번 못 들었다.
여성의 적극적인 경제활동 참여가 한국의 잠재 성장률을 끌어 올릴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한국의 기업문화와 집안 일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육아는 여성이 도맡아 해야 한다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출산 이후 여성의 경력유지(Retain)가 힘든 이유다.
야근과 회식이 잦은 한국의 기업 문화는 또다른 부담이다.
잡코리아가 최근 실시한 '직장인 야근 실태'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도 여성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직장인 5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2.1%가 '야근을 자주한다'고 답했다. '매우 자주'라고 답한 응답자도 21.6%에 달했다. 또 직장인의 하루 평균 야근 시간은 2시간35분이며, 일주일 평균 3회로 집계됐다.
육아는 여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의 편견도 워킹맘의 경력유지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 5월28일부터 6월10일까지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서울의 30∼40대 남성 1000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30~40대 맞벌이 남편(워킹대디)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사람은 15%에 불과했다.
육아휴직기간도 응답자 중 60.8%가 1∼3개월 미만이었다고 응답했다.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소득 감소가 28.8%로 가장 높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유리 천장' 지수를 점수로 환산한 결과, 한국은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28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은 60점이다. 유리 천장은 여성의 사회참여나 직장 내 승진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해결책은 없을까.
경제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대기업들이 여성인력을 대거 고용할 수 있도록 지난달 '여성활약추진법'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301명 이상 직원을 둔 기업은 내년부터 여성 직원 활동 목표 및 전략을 공개해야 한다.
일본은 오는 2020년까지 기업의 관리직 여성 비율을 30%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아젠다인 '우머노믹스(우먼+아베노믹스)'의 일환이다.
육아에 있어 '양성평등' 원칙을 지키는 것도 여성들의 경력유지에 도움이 된다. OECD 국가 중 여성 고용률이 82.5%로 1위인 스웨덴은 양성평등을 기초로 한 육아휴직제도가 가장 잘 정착돼 있는 대표적 국가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물론 아빠도 육아 휴직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스웨덴의 육아휴직은 최장 18개월이며 그 중 최소 3개월은 남성 사용이 의무화돼 있다.
더 많은 기업들이 탄력적 시간선택제 근무 문화를 정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워킹맘으로 경력유지에 성공한 김혜경 현대자동차 자문은 "기업들이 워킹맘들에게 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되면 여성들의 경력유지가 한결 쉬워질 것"이라면서 "여성들도 일, 가정 두 가지를 모두 최상으로 잘해내려는 목표를 잡기 보다 둘 다 원활하게 유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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