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롯데그룹 형제들의 자중지란과 경영권 다툼이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끝나는 모양새다. 지난 17일 열린 롯데홀딩스 임시주총은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형태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기업의 문제는 TV 드라마 속 결말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큰 파장이 따른다. 롯데사태의 경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그룹 주가가 풍비박산 났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을 앞세워 소송을 제기할 것이므로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며 예전과 같은 주가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계열사는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칠성, 롯데케미칼 등 8개사다. 불합리한 경영 행태가 드러나고 롯데그룹의 국적과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으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는 가운데 면세점의 재인가 여부까지 불확실해지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롯데그룹 계열사 시가총액이 증발해 버렸다. 롯데그룹 주식을 보유한 수많은 주주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상장된 롯데그룹의 특징상 경기에 덜 민감한 내수주 성격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도 펀드나 연금이나 보험 등 금융기관들이 적지 않은 롯데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 국민이 미래를 맡긴 국민연금이나 개인연금, 펀드, 보험사들이 보유한 롯데그룹 주식 전체가 폭락한 것이니 과장하면 그야말로 전 국민이 형제 간 경영권 싸움 때문에 크든 적든 손해를 본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바로 여기서 한국에 과연 올바른 자본주의와 제도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다.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이렇게 엄청난 손해를 입힌 경우 손해를 본 소액주주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는가.
자본주의는 자본시장을 근간으로 하며 자본시장은 주주들의 참여로 성립된다. 상장기업의 이사진은 주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아 최선을 다해 경영을 하고 주가를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주가를 지속적으로 높이거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경영진이 다툼과 분쟁으로 주가를 폭락시켜 주주들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면 책임을 지고 경영권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선진국 자본시장은 소송이나 주주행동주의 등 여러 가지 제도를 통해 시장을 규율하고 있지만 한국 자본시장은 분식회계나 주가조작 같은 형사상의 잘못을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대주주 경영진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물러나게 할 제도나 장치가 거의 없다. 집단소송은 거의 불가능하고 해임하려면 전체 주식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한다. 그러니 대주주이면서 경영진인 경우 아무리 큰 사고를 쳐도 이들을 규율할 만한 장치와 방법이 거의 없는 것이다.
경영진이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 agent problem)는 한국의 자본시장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1972년 8ㆍ3 긴급조치 당시 사적 재산의 동결이라는 초헌법적 조치를 통해 대대적으로 기업들을 지원해 주면서 국민들에게 상장을 통한 기업이익의 국민환원을 약속했고 상장을 꺼리는 기업들을 독려하기 위해 대주주의 경영권을 최대한 보호해 주는 방식으로 출발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본시장이 속성으로(?) 육성되다 보니 대주주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행태에 대한 시장의 규율이 처음부터 배제돼 온 것이다.
경영진의 잘못이 법인격체인 기업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에 기업에는 손해가 없도록 하되 소액주주들이 주가를 폭락시킨 경영진의 잘못을 문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차제에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대주주라도 얼마든지 경영참여는 할 수 있다. 대신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을 위태롭게 하고 주가를 폭락시켜 다른 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면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시장이 규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의 소액주주에 대한 이익보호가 119위로 세계 최하위권을 기록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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