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김동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중국 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시즘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전승절)' 행사 참석을 확정 지으면서도 군사퍼레이드(열병식)참관 여부를 '검토중'으로 남긴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 '균형외교'의 난해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0일 오전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계획을 밝힌 뒤 '열병식 참관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반사항을 파악하면서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내부적으로는 방침이 정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결정이든 미국 혹은 중국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스탠스'를 상징하게 된다는 점에서 물밑외교를 통한 상대방 설득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열병식 참관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은 미국의 압박과 국민 정서다. "한국을 침략했던 국가의 군사퍼레이드에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게 적절하냐"는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 부차관보의 18일 세미나 발언이 미국과 국내 정서를 대변한다.
그러나 열병식을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삼고 있는 중국을 실망시키는 일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승절 행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취지를 가지므로, 한국이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명분도 있다. 중국은 한국 독립운동 근거지인 임시정부에 은닉처를 제공한 역사가 있다.
열병식 참관 여부와 별개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 확정은 한일관계 개선을 통한 외교적 입지를 넓히려는 실리적 목적도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열병식을 피한 다른 날짜에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등 중ㆍ일이 밀착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외교적으로 고립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고리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승절 참석과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등 일련의 외교 행보는 박근혜정부 임기 후반기 외교전략의 큰 틀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과 함께 주목을 끄는 부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참석 여부다.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 정상이 베이징에 모일 경우 여러 계기를 통해 조우와 회동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김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중국은 이번 전승절에 50여개국 정상에 초청장을 보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찌감치 참석을 확정한 것을 비롯해 카자흐스탄ㆍ우즈베키스탄ㆍ타지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과 몽골, 체코 정상이 참석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미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지 않는다.
전승절은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침공을 받은 유럽 주요국은 독일이 항복한 5월 8일을 전승일로 기념한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시간으로 5월 9일을 기념일로 삼는다. 반면 중국은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다음날인 9월 3일을 전승일로 지난해 정했다. 올해는 이 날을 법정 휴일로 지정하고 대대적으로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