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아버지와 정면대결 선택한 듯…명분쌓기 위한 만남 이후 현장경영 행보
형과 다른 전략…언론 플레이 대신 경영자 이미지 부각 기회로
도쿄 구상 뭘까, 결정권한 내세워 주총 시기 유리하게 잡을 듯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일 귀국 직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을 찾아간 것은 정면돌파를 위한 명분쌓기의 의도로 해석된다. 신 총괄회장과의 정면 대결에 앞서 아버지를 설득하는 모양새를 보임과 동시에 의중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는 신 회장이 롯데호텔을 나온 직후 행보로도 알 수 있다. 부친의 숙원 사업이자 롯데그룹 최대 현안인 제2롯데월드 타워를 방문, 창업자 정신을 계승해 후계구도의 정통성을 갖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최대 분수령이 될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앞두고 경영자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한편 장기전에도 대비한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경영권 사수와 동시에 장기 분쟁에 대비한 투트랙 전략으로 여론전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아버지 앞세운 형과 차별화…현장경영으로 후계자 이미지 부각=8일만에 국내 복귀한 신 회장의 첫 공식 일정은 제2롯데월드타워 방문이었다. 그 자리에서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등 임직원들에게 "롯데월드타워는 총괄회장의 창업정신에 따라 롯데가 사명감을 가지고 짓는 곳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첫 마디를 꺼냈다.
귀국 직후 기자회견에 앞선 모두발언에서 "총괄회장의 창업정신에 따라 국내외 글로벌 기업이 빨리 정상화되게 발전시키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했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자신이 경영 DNA를 가진 정통 후계자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신 회장은 현재 가장 높은 층인 107층(전체 123층)에 올라가 공사에 참여하는 직원들을 격려했으며 이후 에비뉴엘 건물에 있는 롯데면세점을 찾았다. 신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흑색선전에 치중한 형과는 달리 경영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그 간 자신이 일궈 온 경영권을 사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평가다. 신 회장은 당분간 밀린 현안을 점검하며 현장경영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4일 계열사 2곳을 방문하는 등 현장경영 행보를 이어간다.
롯데그룹 사장단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 반경부터 롯데월드타워 홍보관에서 노병용 대표, 김치현 롯데건설 대표 등 주요 계열사 대표 및 사장단 40여명은 긴급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최근 롯데그룹의 현안에 대해 국민과 임직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과 경영권 분쟁 대응책에 대한 경영진의 입장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또 롯데그룹이 정상화되는데 앞장서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날 사장단 회의에 신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장단들의 자발적인 충성맹세인 셈이다.
롯데 계열사 한 대표는 "롯데그룹을 염려해주시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우선 송구스럽다"며 "책임감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경영에 매진해 국민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온 그룹의 위상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승기 주도할 도쿄 구상은=신 회장의 경영자 이미지 부각 전략은 장기전에 대비한 정면 투쟁을 예고한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향후 후계 전쟁을 판가름할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얘기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분기점이다. 롯데그룹 최대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와 광윤사의 지분구조는 오너 일가 외에는 알 수가 없다. 신 회장 역시 지분 구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여기서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비밀주의를 이어갔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 회장이 서로 우호지분이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도 불가피하다. 다만,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장악한 신 회장이 더 우위에 있다는 전망만 나올 뿐이다.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주총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사회를 장악했으나, 최대 주주인 광윤사와 우리사주의 지지를 확신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주총이 열린다면 정관에 명예회장 추대조항 신설은 물론 임원진 교체안건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주총에서 정관변경이 승인돼야 이길 수 있다. 주주들이 신 총괄회장의 결정을 뒤엎은 신 회장과 이사회의 판단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 회장은 이사회가 주총 개최 결정 권한을 가진 점을 활용해 가장 유리한 시기에 주총을 개최할 가능성이 높다.
주총이 끝나도 모든 게임이 끝났다고는 볼 수 없다. 양 측 모두 주총 결과에 따라 법적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이사회 장악을 못한 신 전 부회장은 주총에서 패배할 경우 아버지의 지시서와 뜻을 앞세워 법적 분쟁을 벌일 수 있다. 소송으로 갈 경우 신 전 부회장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시서의 법적 효력이 없는데다 신 총괄회장의 의중이 건강한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신 회장도 기자회견에서 "신 전 부회장의 지시서는 법적 효력이 없는 문서"라고 재확인했다.
다만, 소송으로 갈 경우 여론에 대한 리스크는 신 회장으로서는 부담이다. 정치권에서도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어 양 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카드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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