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손선희 기자] '세탁기 파손 논란'으로 법정에 선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사장) 측은 3일 "(삼성전자의) 세탁기를 파손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오는 21일 현장검증을 실시하기로 했다.
조 사장 측 변호인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부장판사 윤승은)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공판은 조 사장과 공동 기소된 조한기 당시 세탁기연구소장(상무) 외 1인 등 총 3명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조 사장을 비롯한 피고인 3인은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IFA) 기간 중 현지 가전매장 '자툰'을 방문해 경쟁사인 삼성전자 부스에 전시된 세탁기 문을 고의로 파손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정작 당사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양 측은 지난 3월 공동 보도자료를 내고 "모든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한다"며 화해했지만 검찰은 조 사장에 대한 혐의를 인정, 형사기소했다.
이날 조 사장 측 변호인은 세탁기 파손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적극 설명하며 "문제가 됐던 삼성전자 크리스탈 블루의 세탁기 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은 이중힌지 장치 때문으로, (피고인의 의도적인) 손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 피고인(조 사장)이 경쟁사 부스에 가서 세탁기를 부수려 했다면 (현장에 있던 경쟁사의) 프로모터나 CCTV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리가 없다"면서 "당시 피고인이 세탁기 문을 누르는 행동을 한 직후 (세탁기가) 파손됐다는 것을 증명할 영상이 나오지 않았고, 목격자들의 증언도 검찰의 기소내용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세탁기 도어의 구조와 세탁기 문을 열고 닫는 장면을 담은 시각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검찰은 "프로모터들은 삼성전자 사장이 온 것으로 생각했다"며 "조 사장과 조한기 상무 등 일행은 2시간 뒤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행위를 해 현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지 조사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이 아니라 '재범을 않는다'는 조건으로 제품 값을 물어주고 합의에 의해 풀려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며 추가 증거자료를 제시하겠다고 맞섰다.
양측은 공판 도중 변호인 측이 제시한 동영상 공개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당시 현장을 촬영한 서로 다른 각도의 두 CCTV 영상을 한 화면에 담아 제시했고 검찰 측은 "편집된 영상"이라며 거부했다. 양측 주장이 엇갈리자 담당 판사의 중재로 영상은 공개됐다. 변호인 측은 "피고인 일행과 프로모터가 2~3미터 정도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설명했고, 검찰 측은 "가까이 서 있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세탁기 문을 누르는 행위를 할 때 프로모터가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90여분간 이어진 공판 막바지에 조 사장 측 변호인은 "삼성과 엘지가 화해해서 쌍방 고소를 취하했는데 이는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기 때문"이라며 "화해에도 불구하고 법적 판단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과연 피고인의 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이 될 만한 범죄인지 재판부의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양방 화해로 당황스럽긴 하지만 잘못된 것은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피고인 자격으로 법원에 출석한 조 사장은 공판에 앞서 취재진을 만나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라며 짧게 밝혔다. 두 손을 공손히 모은 모습이었다. 이후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굳은 표정으로 지켜본 뒤 별다른 말없이 법정을 떠났다.
검찰은 오는 21일 2차 공판에서 공소 대상인 파손된 세탁기 3대를 포함, 서울중앙지검에서 보관되고 있는 총 7대의 세탁기와 비교 대상이 될 정상 세탁기 최소 1대에서 최대 3대까지 검증할 계획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합의정신을 참작, 재판도 조기에 종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두 회사의 이미지와 국제신용도를 고려, 검찰이 대승적 차원에서 재판의 조기 종결을 법원에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고위관계자는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해 재판이 계속되면 재판의 속성상 서로 상대방의 불리한 점을 부각시키게 된다"며 "법정에서 계속 서로를 공격해 소모적인 논쟁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제3의 피해자가 없다는 점을 법원이 감안해 빠른 사건종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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