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달마와 수노인(壽老人)의 눈을 비교해보렴. 달마도에선 눈동자가 위쪽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리고 수로예구의 노인은 아래로 찍혀 있지. 달마의 아랫입술은 가운데가 돋아올라가 입을 꾹 다문 채 큰 상념에 잠겨 있는 표정일 거야. 하지만 수노인은 긴 턱수염 위에 입꼬리가 올라가 부드러운 얼굴이지. 달마의 코는 서역인의 특징인 매부리코를 하고 있지만 수노인은 중국 특유의 주먹코라는 점도 봐두렴.
내가 실로 나의 자화상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얼굴은 달마가 아니라 수노인일세. 형상이 비슷하다는 건 물론 아니네. 중국인들은 요즘의 처녀자리를 수성(壽星ㆍ남극성ㆍ노인성이라고도 함)이라고 부르네. 이 별에 사는 신선인 수노인은 길쭉한 얼굴(長頭)이 특징일세. 이 별은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사라졌다가 다시 평화를 찾으면 나타난다고 하지. 놀랍게도 중국에는 이 노인 신선이 직접 나타나 황제와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눴다고 하네. 1063년 11월의 일이지.
내가 사는 시대는 수많은 병화(兵禍ㆍ임진왜란, 정유재란,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지 친 조선이 평화를 갈구할 무렵이니 수노인이 꼭 필요한 때가 아닌가. 나 또한 평생 술을 좋아하여 취생몽사한 사람이니 수노인의 일곱 말술쯤이야 한번 배틀을 벌여볼 만하지. 자, 그런 기분으로 이제 내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게. 눈동자가 아래로 붙어 내려다보는 것은 세상을 굽어보는 신선이기 때문일세.
중국 전설에는 수노인이 장신이라고 하였으나 개봉에 나타났다는 노인이 단구라고 하니 그것에 맞게 그렸네. 이야기를 들어주는 큰 귀와 빙긋이 웃는 미소는 바로 평화의 비밀이기도 하다네. 외눈썹 한 줄기가 길게 뻗어 나간 게 보이는가. 이것은 나의 실제 모습의 특징이라네. 내가 끌고 있는 거북은 속세의 사람들이 내 말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는지 장수의 상징을 하나 더 넣어달라고 성화이기에 찬조출연을 시켰다네. 거북이가 왜 거북이같지 않느냐고? 거북인줄 알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빈섬 이상국 (시인ㆍ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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