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림의 발견]김명국의 자화상은 달마가 아니라 수노인

시계아이콘읽는 시간46초

[그림의 발견]김명국의 자화상은 달마가 아니라 수노인 김명국 '달마상'
AD



내가 그린 달마와 수노인(壽老人)의 눈을 비교해보렴. 달마도에선 눈동자가 위쪽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리고 수로예구의 노인은 아래로 찍혀 있지. 달마의 아랫입술은 가운데가 돋아올라가 입을 꾹 다문 채 큰 상념에 잠겨 있는 표정일 거야. 하지만 수노인은 긴 턱수염 위에 입꼬리가 올라가 부드러운 얼굴이지. 달마의 코는 서역인의 특징인 매부리코를 하고 있지만 수노인은 중국 특유의 주먹코라는 점도 봐두렴.

[그림의 발견]김명국의 자화상은 달마가 아니라 수노인 김명국 '수로예구(壽老曳龜)'



내가 실로 나의 자화상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얼굴은 달마가 아니라 수노인일세. 형상이 비슷하다는 건 물론 아니네. 중국인들은 요즘의 처녀자리를 수성(壽星ㆍ남극성ㆍ노인성이라고도 함)이라고 부르네. 이 별에 사는 신선인 수노인은 길쭉한 얼굴(長頭)이 특징일세. 이 별은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사라졌다가 다시 평화를 찾으면 나타난다고 하지. 놀랍게도 중국에는 이 노인 신선이 직접 나타나 황제와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눴다고 하네. 1063년 11월의 일이지.

내가 사는 시대는 수많은 병화(兵禍ㆍ임진왜란, 정유재란, 인조반정,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지 친 조선이 평화를 갈구할 무렵이니 수노인이 꼭 필요한 때가 아닌가. 나 또한 평생 술을 좋아하여 취생몽사한 사람이니 수노인의 일곱 말술쯤이야 한번 배틀을 벌여볼 만하지. 자, 그런 기분으로 이제 내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게. 눈동자가 아래로 붙어 내려다보는 것은 세상을 굽어보는 신선이기 때문일세.


중국 전설에는 수노인이 장신이라고 하였으나 개봉에 나타났다는 노인이 단구라고 하니 그것에 맞게 그렸네. 이야기를 들어주는 큰 귀와 빙긋이 웃는 미소는 바로 평화의 비밀이기도 하다네. 외눈썹 한 줄기가 길게 뻗어 나간 게 보이는가. 이것은 나의 실제 모습의 특징이라네. 내가 끌고 있는 거북은 속세의 사람들이 내 말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는지 장수의 상징을 하나 더 넣어달라고 성화이기에 찬조출연을 시켰다네. 거북이가 왜 거북이같지 않느냐고? 거북인줄 알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



빈섬 이상국 (시인ㆍ편집부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