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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다 솔로몬인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38초

법대로 하는데…비슷한 사건도 달라지는 판결

판사는 다 솔로몬인가 판결 VS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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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S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 출발해 장수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비결은 심층보도로 사건 원인을 자세하게 소개하는데 있다. '감성'보다 '사실'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사회자가 스토리텔링 전달 방식으로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간다. 신간 '판결 VS 판결'은 이 두 가지 포맷을 통해 법정에서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준다. 사건번호와 판결 내용 심지어 판사의 실명까지 밝히고, 그런 판결을 내리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어준다. 사건 주변인과 경찰 취재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연장선 위에 있는 느낌이다.

그 서술은 단순히 사건을 소개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비슷한 사안에도 상반된 판결이 나온 사례들을 스무 가지 범주로 묶어서 비교한다. 판결을 홀로 볼 때는 가려져 있던 법리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판결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비평하는 내용도 담았다. 저자는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법감정으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두 판결을 대비시켰다"며 "이런 방식은 흥미를 줄뿐 아니라, 다루는 판결의 핵심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책 제목이 '판결 VS 판결'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2005년부터 인터넷신문과 블로그 등에 판결 분석이나 사법개혁에 대한 글을 쓴 법조전문 시민기자다. 서울가정법원, 서울중앙지법, 서울동부지법, 고양지원 등에서 15년째 법원공무원으로 일하는데 법원에 근무하는 장점을 살려 서기호, 이정렬, 최은배 판사 등을 단독 인터뷰하기도 했다. 어려운 법을 생생한 사례들 속에 녹여낸 이야기에 미국 ABC 방송은 2006년 그를 '직업의 특성을 잘 살려서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시민기자의 모델'로 선정했다. 저자는 "법 앞에만 서면 움츠러들고 억울해하면서도 정작 법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드물고, 이론중심의 천편일률적인 법률서적만 넘쳐나는 현실이 아쉬워서 직접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법률을 친근하게 소개하기 위한 노력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생생한 실제 판결 사례를 담아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과잉금지 원칙, 비례의 원칙, 소급입법 금지와 같은 딱딱한 법의 원칙들을 이해하기 쉽게 도와준다. 문장의 대부분은 간결하다. 독자가 의문을 제기할 만한 부분에 물음표를 넣고 바로 이유를 설명하는 친절함까지 돋보인다. 저자는 실제 판결 사례로 최근의 것을 많이 담았다. 올해 상반기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킨 'KTX 여승무원 복직 요구 소송'과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전자를 통해 저자는 정치적 목적이 판결에 개입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되새겨준다. 집에 들어온 도둑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청년처럼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를 법한 사건을 가져와 정당방위의 요건과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소록도 한센인 강제단종',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폭행' 등 국가를 상대로 한 두 소송을 통해 국가의 부당한 폭력을 단죄하고 바로잡는 판결의 중요한 역할도 확인하게 해준다. 압권은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는 부분이다. 안도현 시인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1심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무죄평결을 뒤집은 것에 대해 '일반인이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직업법관이 판단하겠다는 뜻'이라며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배심원들의 평결보다 우위에 있거나, 더 타당하다는 견해를 내비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법부는 판사들의 선발부터 재판까지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판사를 포함한 소수의 법률전문가 집단이 그들만의 언어로 재판을 해오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주장한다.


현실에서 '솔로몬의 재판'과 같은 판결은 없을 것이다. 이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말이다. 판사들은 오답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인 최선의 판결을 내릴 뿐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판사들이 고민을 거듭해가며 답을 내놓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케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판결을 '추상적인 법을 판사가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판사들이 항상 최상의 답을 내린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오답 가능성을 최대한 줄인 최선의 답을 내리는 일이 판사들의 몫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차원에서 '내가 판사였다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라고 상상하고 고민한다면 이 책은 더욱 흥미로운 독서를 선사할 것이다. (판결 VS 판결 / 김용국 지음 / 개마고원 / 1만40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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