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중앙은행 디폴트·그렉시트 첫 공개 언급…英 등 비상대책 마련 나서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그리스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스 중앙은행이 17일(현지시간) 처음으로 자국 디폴트(채무불이행)ㆍ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자국 정부가 그리스 디폴트에 대비한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이날 보도했다. 아일랜드도 비상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그리스 사태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향후 4주간의 주요 변수를 짚었다.
18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가 시발점이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는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타결을 기대해볼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지만 가능성은 점차 줄고 있다.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그리스와 채권단이 서로를 비난하며 네 탓 공방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지난 15일 '약탈'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채권단을 맹비난했고 곧바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치프라스 총리가 거짓말로 그리스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설전 후 치프라스 총리가 17일 융커 집행위원장에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FT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18일 회의에 참석하겠지만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감도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18일 회의에서 진전이 없다면 비(非)유로권 재무장관들도 참여하는 19일 EU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사실상 논의할 것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무장관 회의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으면 유럽 정상들이 어떻게든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일요일인 21일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것이다. 이보다 빨리 재무장관 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19일 유로존 정상들이 긴급 회동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가 없었던만큼 정상회의가 말만 많은 회의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가 계속해서 정상 차원에서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던만큼 예상 외의 극적인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도 있다.
만약 정상회의에서 조차 성과가 없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이 된다. 그리스와 채권단간의 현재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이달 말 종료된다. 그리스는 이달 말에 국제통화기금(IMF)에 15억5000만유로를 갚아야 하고 자국 공무원들에게도 급여와 연금으로 15억유로를 내놔야 한다.
돈이 없는 그리스 정부는 자본통제에 나설 수 있고 이에 ECB는 그리스의 파산을 선언하고 모든 지원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 ECB로부터 지원이 끊긴 그리스 자체적인 통화와 새 중앙은행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 그렉시트가 현실화되는 셈이다. 그리스가 극적으로 이달 말을 넘기더라도 ECB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이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언급했던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uncharted territory)'에 진입하는 셈이 된다. 그리스는 내달 20일에 ECB에 35억유로를 갚아야 하고 8월20일에도 32억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이달 25~25일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긴 하지만 이 회의는 그리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다. 25~26일 회의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EU 조약 개정 요구안을 공개하고 이를 논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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