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화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유승민 새누리당,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최종 중재'를 시도한 11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입장을 내더라도 입장을 내겠다고 미리 예고하지는 않는다"며 즉답을 회피했다.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서 국회의 시행령 수정ㆍ변경 요구 구속력을 다소 낮춘 정 의장의 중재안에 여야가 합의를 이룰 경우, 중재안은 이날 곧바로 정부로 이송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의 '강제성'에 문제를 삼으며, 본회의 통과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정부로 송부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검토해달라"고 한 바 있다.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여야가 재차 합의를 통해 마련한 법안마저 박 대통령이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반면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정 의장은 이날 오후 원안 그대로 정부에 이송할 방침이어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권 행사 계획을 시사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정치적 부메랑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라는 주장이지만 이에 대한 법조계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데다, 국회 합의정신을 무력화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10일 박 대통령이 다음 주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한 것이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여지도 있다. 메르스 조기차단 실패로 정부를 향한 비판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국가위기 상황에서 자리를 비우는 데 대한 국민적 반감이 더해져 국정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방미 연기라는 승부수를 던져 민심을 다잡음으로써,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더라도 역풍으로 이어지지 않을 여유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