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꼬마일 때 공이 실린 수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수레를 끌어당기면 공이 뒤쪽으로 굴러갔고 수레를 멈추면 공이 다시 앞쪽으로 굴러왔다. 호기심이 많은 파인만은 아버지에게 왜 공이 그렇게 움직이는지 물었다. 파인만의 부친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아무도 모른단다. 일반원리는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멈춰 있는 물체는 멈춘 채 그대로 있으려고 한다는 거야. 이런 경향을 '관성'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라."
파인만의 부친은 다른 기회에 새의 이름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 새가 보이니? 저건 스펜서 딱새란다. (실은 그의 부친도 그 새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저 새는 이탈리아 말로는 추토 리피티다이고 포르투갈 말로는 봄다 페이다야, 또 중국어로는 충롱태이고, 일본말로는 가타노 데케다야지. 저 새의 이름을 세계의 모든 나라 말로 알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해도 진짜 저 새에 관해서는 하나도 알아낸 게 없어."
이 두 사례를 통해 부친은 파인만에게 이름은 이름에 그칠 뿐, 중요한 것을 드러내지 못함을 깨우쳐주었다. 파인만은 "무엇인가의 이름을 아는 것과 그것에 대해 뭔가를 아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이를 테면 관성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그 새가 다른 새와 비교해 어떤 점에서 다르게 생존하고 번식하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파인만 부친의 가르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물과 생물, 사실, 그리고 현상에 붙은 이름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관련된 원리다. 원리를 파악하면 응용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단편적인 지식을 맞히는 데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훌쩍 앞질렀다. IBM 슈퍼컴퓨터 왓슨은 이미 2011년에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했다. 앞으로 세상은 방대한 자료와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컴퓨터에 맡기고 사람들은 컴퓨터를 부려서 일하거나 더 창의적인 업무에 전념하는 쪽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세상에 대비하려면 사실을 암기하는 학습보다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우리나라 TV 퀴즈 프로그램은 옛날식 문제에 머물러 있다. 인물과 작품, 제도의 이름을 답하라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보다는 주로 '왜'나 '어떻게'를 묻는 퀴즈 프로그램이 바람직하다. 뛰어난 물리학자를 길러내는 것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 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