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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시도 등 딛고 일어선 노인 만화가의 자활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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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구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 복지사각지대 김영진 할아버지 발굴, 장기 자활 지원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아 작가로 활동하며 한 땐 잘나갔지. 철없던 시절 가족도 외면하고 방탕하게 살다보니 어느새 가족들은 모두 떠나버리고 가난과 늙고 병든 몸뚱이만 남았지 뭐야. 지난날은 돌아보면 후회 뿐, 이런 내가 싫어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어르신의 서글픈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연극은 만화가였던 주인공이 주변의 도움으로 다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돼 감사 인사를 하면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어느 만화가 노인의 꿈’이라는 제목의 이 연극은 지난해 동대문구가 주관한 ‘동 희망복지위원회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했다.


또 동대문구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가 복지사각지대였던 홀몸어르신을 발굴, 구의 긴급지원 제도를 활용해 생계 유지를 돕고 일자리를 지원, 서서히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를 살린 실화이기도 하다.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가 동 주민센터와 복지사각지대에 있던 어르신을 발굴?지원해 1년 동안 성공적인 자활을 도운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자살시도 등 딛고 일어선 노인 만화가의 자활프로젝트 김영진 할아버지 동양화 그리기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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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르신은 만화가였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현재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화조 따라 그리기 교실’을 운영하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 소속 주민 2명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김희준 어르신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집주인으로부터 3층에 거주하고 있는 김영진 할아버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김 할아버지는 소득이 없고 가족과도 단절됐으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끼니 해결은 물론 월세도 1년 가까이 밀려 있다는 것.


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미술 재능을 인정받고 유명잡지사에 보낸 공모작이 당선돼 작가로도 수 십년간 활동했다. 이후 생계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 끝에 재산을 탕진해 가족들도 모두 등을 돌리자 자개장그림을 그리거나 방수 건축일 등을 전전했다.


이마저도 건강이 나빠져 할 수 없게 돼 굶기를 밥먹듯 하던 김 할아버지는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으나 교회 목사를 만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아 지난해 3월 회기동 복지지원팀 직원들과 희망복지위원들이 집을 찾았을 당시 공동 취사가스조차 장기체납으로 끊어진 상태였으며 월세가 밀려 집에서도 쫓겨날 상황이었다.


한 희망복지위원은 “어르신이 거주하는 집은 2평 정도의 작은 방으로 밥통과 얇은 이불 그리고 옷가지가 다였다”면서 “별거 후 자연스럽게 자녀들과도 관계가 단절, 아내와 자식들에게 연락할 염치가 없다며 피하다보니 다시 연락할 방법도 사라진 같다”고 전했다.

자살시도 등 딛고 일어선 노인 만화가의 자활프로젝트 김영진 할아버지


이에 회기동 주민센터는 곧 바로 ‘따뜻한겨울보내기’ 후원금으로 생계비 40만원을 긴급지원, 서울형기초보장수급자로 결정될 수 있도록 신청을 도와 월 20만원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1년이 넘는 ‘김 할아버지 자활 장기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선 동 주민센터와 희망복지위원회는 매월 ‘반찬가게 부식’ 및 매주 ‘사랑의 줄잇기 식사’를 제공, 여름철에는 여름이불과 선풍기 등 지속적인 지원과 방문을 통해 1년 동안 김 할아버지의 생계를 지원했다.


이어 9월에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가 ‘저소득 주민 월세 지원금 마련을 위한 사랑나눔 자선바자회‘를 개최하면서 김 할아버지에게 바자회 체험프로그램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캐리커처를 부탁했다.


어르신의 섬세한 캐리커처와 풍속화 등은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총 37만원 수익을 내기도 했다.


또 바자회가 끝난 후 위원들은 회의를 거쳐 전문가 유화물감과 100만원 상당의 최신 노트북을 선물하는 등 김 할아버지가 화가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왔다.


11월에는 ‘동대문구 복지공동체 동 희망복지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어느 만화가 노인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김 할아버지의 자활 사례를 시나리오로 작성?발표했다.


연극 무대를 위해 김 할아버지는 일주일 이상 8자 병풍 크기의 배경을 직접 그렸고, 신강수 회기동 희망복지위원장을 비롯한 희망복지위원들은 연극에 직접 참여했다.


김 할아버지의 생활이 서서히 안정되고 그림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올1월부터는 시민청 내 서울책방을 운영하는 김의수(동대문구 협동조합, 한우리문고사장)희망복지위원의 권유로 이곳에서 매월 1회 캐리커처 그려주기 행사를 시작했다.


또 서초국립중앙도서실 개관식과 4월에 열린 ‘자치구 환경 세계총회’에도 캐리커처 강사로 초빙돼 활동하면서 김 할아버지는 스스로 힘으로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생활력을 키우게 됐다.


특히 지난 4월에는 회기동 희망복지위원회의 특화사업인 ‘화조 따라 그리기 교실’도 시작했다.

자살시도 등 딛고 일어선 노인 만화가의 자활프로젝트 김영진 할아버지와 제자들


강사로 나선 김 할아버지는 2시간 동안 또래 할아버지?할머니들에게 화조 등 동양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직접 시범도 보인다.


74세 나이에 현역 화가처럼 다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한 김 할아버지는“회기동 주민센터 직원들과 희망복지위원회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만큼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주변과 나누며 살고 있다”며 “요즘은 다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려 덕수궁 앞에서 팔고 싶은 화가로서 욕심도 생겼다”며 작은 꿈을 전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동 주민센터와 희망복지위원회간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구의 체계적인 지원제도가 만나 복지사각지대였던 김 할아버지를 발굴, 작은 기적을 만들었다”면서 “제도적 생계지원을 넘어 구와 주민들이 물심양면으로 어르신의 홀로서기를 도운 모범적인 자활 사례인 만큼 이를 교훈 삼아 앞으로 더 많은 김노인을 발굴?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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