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 무죄 확정…검찰 주도, 법원 방조한 현대사의 민낯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한국 현대사에 각인됐던 '왜곡의 그림자'가 벗겨졌다.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은 결국 '무죄'로 최종 결론이 났다. 무려 24년만이다. 검찰이 주도하고 법원이 방조했던 사법부의 부끄러운 민낯도 실체를 드러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상훈)는 14일 강씨를 둘러싼 '자살방조' 등의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재심 판결을 확정했다. 강씨는 2008년 1월 재심을 청구한지 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주민 변호사는 "민주화운동 세력은 이번 판결로 명예를 회복했다"면서 "검찰은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내몰았다는 점에서 진심어린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무죄 확정 뒤에도 밝게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강씨의 삶은 여전히 1991년 그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1991년 5월8일 오전 8시7분, 서울 마포구 서강대 본관 5층 옥상.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씨가 투신했다. 옥상에 벗어 놓은 양복 상의에서 유서 2장이 발견됐다. 당시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목숨을 내던지던 분신정국이었다.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은 "우리 사회에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어둠의 세력'을 찾아 나섰다. 아니 찾아야만 했다.
당시는 노태우 정부가 정치적 위기에 몰리던 시기였다.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할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강씨였다. 검찰은 "김기설씨 필적이 유서와 다르다"면서 전민련 총무국장 강기훈씨를 대필자로 지목했다. 이에 사회적인 충격은 너무 컸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생명까지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려든다는 멍에를 뒤집어쓰며 도덕성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노태우 정부는 확실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곧장 경멸어린 시선이 강씨에게 쏟아졌다. 강씨는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당시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결과를 발표했다. '국과수'라는 이름에 담긴 권위는 당사자의 항변과 반론을 잠재우기 충분했다.
그러던 중 국과수 필적 감정 책임자인 김모 실장이 뇌물을 받고 허위 감정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뇌물은 받았지만 허위 감정은 없었다면서 긴급 진화에 나섰다.
이같은 억지 수사결과에 강씨는 1992년 7월 자살방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만기 출소할 때까지 감옥에서 처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법부는 그의 항변을 경청하지 않았다.
사회는 그를 손가락질했다. '강기훈=유서대필'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그의 이름은 파렴치한 인물의 상징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거짓은 결국 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찰청 과거사위원회는 2005년 12월 "유서는 김기설의 필체로 보인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국과수에 다시 한 번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강씨와 유서의 필체가 다르다"는 감정결과를 내놓았다.
정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유서대필 사건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법원은 재심을 결정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유서는 피고인이 아니라 김기설이 직접 작성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이 서울고법 판결을 받아들이면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강씨는 웃을 수 없었다.
강씨는 사법고시생이 자신의 사건을 통해 '자살방조죄'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가장 괴로웠다고 전했다. 뒤늦게 드러난 진실이 그의 일그러진 삶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20대 청년은 어느새 늙고 병든 50대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강씨는 '간암'으로 투병 중이다.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를 위태로운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해 2월 대검찰청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누명과 고통 속에 강기훈은 간 경변과 간암 2기라는 치명적인 육체의 병을 얻었고, 현재는 몸의 면역력 부족으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검찰이 재심 무죄 판결이 나왔는데도 반성은커녕 대법원 상고를 선택한 것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였다. "검찰은 강기훈의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느냐"면서 울분을 토했다.
강씨는 자신의 무죄 확정보다 검찰과 법원의 진심어린 반성을 기다렸다. 하지만 검찰이나 법원 모두 참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진실이 밝혀졌지만 이미 너무 늦었고 세월은 너무나 흘러버렸다. 강기훈씨는 무거운 병자가 됐고, 평생 한 맺힌 삶을 살았던 어머님은 무죄 소식도 듣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뒤늦은 진실 앞에서도 깊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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