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관악을에서 만난 신구(新舊) 고시생
- 성완종 리스트엔 '투표의 중요성' 강조
- 고시의 추억, 미시적 현안, 거시적 담론까지 이야기 이어져
[아시아경제 홍유라 기자] 고시에 합격한지 어언 30년이 지나 또 다시 대권(大權)을 바라보는 60대 남자. 2015년 오늘날 고시 합격을 염원하는 2~30대 청년들. 전자가 구(舊) 고시생이라면, 후자는 신(新) 고시생이다. 그들의 만남이 서울 관악 한 고시식당에서 4·29 재보선 공식 선거운동 둘째날인 17일 오전 이뤄졌다. 추억으로 시작된 대화는 정치 현안부터 나라의 미래를 넘나들었다. 45분 남짓 진행된 대화였지만 내용은 짧지만 길었다.
"헌법학에서 거의 최고득점이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본인의 사법고시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말문을 열었다. 문 대표는 "원래 다른 거 이 뭐(별로인 것을) 헌법학으로 다 커버했다"고 말하며 고시생들의 바이블 '한국헌법론'을 쓴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를 떠올렸다. 그는 "허영 교수는 나 대학 다닐 때 경희대 교수하시다가 재임용 탈락해서 연세대에서 임용을 마쳤는데 헌법학에서는 거장이다"라고 설명했다.
고시라는 공통분모에서 시작된 대화의 열기는 후끈했다. 웬만한 정책·현안 토론회를 방불케 했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 한 고시생이 "앞으로 성완종 리스트 관련해서 대응방향이 뭐냐"고 묻자 문 대표는 "결국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 투표밖에 없다"고 답했다.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 규명 몫으로 검찰도, 특검도 아닌 '투표의 중요성'을 언급한 셈이다. 이어 그는 "검찰이 제대로 할리 없으니 특검을 가야 하지만, 특검조차도 진실을 밝히리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여론을 보여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경제 현안에 대한 질문도 잇따랐다. 경제 이슈의 단연 중심인 연금 얘기가 나왔다. 문 대표는 연금의 제1덕목으로 '노후소득 보장기능'을 꼽았다. 때문에 문 대표는 "고통을 분담할지언정 연금의 노후보장 기능을 축소하면 안 된다"면서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의 노후소득 보장기능을 더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연금에 대해선 "본인 부담률을 높이고 하후상박 원칙으로 고위공직자들 연금을 낮추든지 해서 적자도 줄여나가자"고 말했다.
고시생들은 본인의 일상과 이해관계가 깊은 로스쿨 제도, 공무원 임용, 고시 민간 경력 특채 등에 대한 질문도 쏟아냈다. 특히 2017년 폐지되는 사법고시로 인해 로스쿨 제도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고시생들은 고충을 토로했다. 한 고시생은 "로스쿨의 취지가 처음엔 좋았지만 이제 있는 집 자식만 가는 거 아니냐"며 "돈 있는 사람만 고시 공부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문 대표는 "잘 몰라서 그렇지 로스쿨에서 그냥 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학제도가 많다"고 설명하면서도 "우리 당의 박영선 의원이 법안 하나 내놓긴 했는데 로스쿨 외의 통로를 하나 만들어 주는 게……"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시생, 그들의 젊은 날 고민은 일상생활, 국가적 현안 등을 가리지 않았다. 문 대표는 질문 하나 하나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속내를 털어 놓으며 좀 더 솔직하게, 좀 더 뜨겁게 답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야당 의원도 있다는 보도로 떠들썩한 와중이었지만 문 대표는 청년들과 뜨겁게 대화를 나눴다. 때문인지 대화는 깊어졌다. 국가 운영의 거시적 담론을 묻고 답하는 얘기가 이어졌다.
한 고시생은 "문 대표의 복지정책이 뭐냐"고 물었다. 문 대표는 '실용적' '조화' 등을 문 대표식 복지의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는 "복지는 보편적이냐 선별적이냐 라는 논쟁이 중요하지 않다"면서 "기본적 부분은 보편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선별로 그렇게 실용적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보편과 선별이 적절히 조화되는 복지"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인구 비례로 봤을 때 공무원이 적은 편이니, 그 수를 늘리는 것은 어떤가"라는 다른 고시생의 질문엔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공공서비스는 늘어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 일인당 담당하는 국민 수가 OECD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많다"면서 "공무원 늘리면 국민들 서비스도 좋아지는데 작은 정부는 전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결국 예상보다 30분가량 지연된 이날 오후 1시가 돼서야 '구(舊) 고시생과 신(新) 고시생의 만남'은 마무리 됐다. 선거 유세 일정이 줄줄이 잡혀있는 문 대표였지만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열띤 대화 끝에 고시식당을 나서는 문 대표의 표정은 살짝 상기돼 보였다. 다른 누구의 질문보다도 열심히, 긴 시간 답변하던 문 대표. 관악 고시식당의 45분을 그가 "즐긴 듯 했다"는 건 착각일까.
홍유라 기자 vand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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