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한 근원물가 등 호재 보이지만 실물경기는 여전히 바닥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최근 물가가 낮은 이유는 유가 하락 등 공급 측 요인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1일, 기획재정부)
"성장성 부재와 함께 물가의 수요 견인력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디플레라 해도 할 말이 없다."(3일, 하나대투증권)
정부가 거듭 디플레 상황이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이를 못 믿겠다는 반응들도 끊임없이 나온다. 도대체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월에 이어 3월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하자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또 다시 높아졌다.
정부는 저유가 탓에 잠시 물가가 낮아진 것뿐이지, 곧 상승 곡선을 회복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 근거로는 양호한 근원물가 수준을 들고 있다. 3월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1년 전 같은 달보다 2.1% 올라 3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9∼12월에는 4개월 연속 1%대였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도 "근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수치로 따지면 2개월째 하락세를 보였으나 전월비로는 한 달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며 "소비자들의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아직 2%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어 당장 디플레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준협 실장은 이어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3개월 연속 상승한 것에 비춰볼 때 하반기에는 미약하나마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향후 경기 상황을 예고해준다. 보통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추세적으로 상승하면 경기 전환의 신호탄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만 놓고 보면 우리 경제가 상승세를 맞이하고 있어야 하지만 실물경기는 둔화세가 깊다"며 "국내총생산(GDP)과 궤를 같이 하는 광공업과 서비스업 생산이 답보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고 반론했다. 그러면서 "올 초 담뱃값을 2000원 올린 데 따른 물가 인상 효과(0.58%포인트)가 없었다면 이미 유럽과 같은 디플레"라고 강조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좋게 나오는 것도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반짝 효과'일 수 있다고 김 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 9개 구성항목 중 코스피, 장·단기 금리차 등 금융 부문을 제외해 보니 호조가 아니라 오히려 부진했다"며 "생산, 소비, 투자, 고용 등 실물경기가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이재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수치상으론 디플레이션이 아니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진짜 문제는 경제 체력"이라며 "내수, 대외수요 등이 모두 부진한 와중에 내부나 외부에서 충격이 발생하면 1990년대 일본처럼 경제성장률이 고꾸라질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