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임선태 기자, 조은임 기자] 안심전환대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가 서민금융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여론을 의식해 선심성 정책을 약속하는 것은 금융 시장의 고유 기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일부 계층의 모럴해저드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도 정부 입만 바라보느라 전략 수립이 사실상 올스톱됐다. 가계부채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출시된 안심전환대출의 성공이 뜻하지 않은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다.
◆금융정책 포퓰리즘 신호탄?= 금융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안심전환대출의 출시가 4ㆍ29 재ㆍ보궐 선거 시즌과 겹친다는 것이다. 1%대 수익공유형 모기지 등 다양한 유인책에도 꿈쩍 않던 시장이 안심전환대출 이후 움직이자 정치권은 물론 청와대도 반색하고 있다. 내친김에 미소금융과 햇살론 등 서민금융 지원책을 모두 꺼내들었다. '더 이상의 추가대책은 없다'던 금융위원회도 방향을 급선회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난처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표적인 정책이 미소금융이다. 금융 당국은 그동안 이 정책을 '실패'로 규정해왔는데 입장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서민금융 정책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부실이 남게 마련"이라며 "안심전환대출 성공에 정부와 정치권이 (표와 여론을 의식해)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사를 자임하면서 일부 계층의 모럴해저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제로 2%대의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된 이후 일선 은행 영업점에는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소비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A은행 직원은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 안심전환대출까지 출시되면서 가입 상품의 금리는 인하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 고객들이 불만이 크게 늘었다"며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하러 왔다가 고정금리이거나 주택가격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상품 변경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고객들의 거친 항의가 먹히는 경우도 있다. 실랑이를 우려하는 영업점에서 금리 인하 등의 혜택을 조심스럽게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제때 대출금을 갚고 수수료를 내는 착한 고객들만 선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금융 업계 관계자는 "신용도가 낮은 일부 소비자들은 보다 낮은 금리의 정책금융 상품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버티는 상황도 나타난다"며 모럴해저들을 우려했다.
◆시장 기능 빼앗긴 은행권= 금융권의 시장 기능도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안심전환대출 상품 이후 사실상 전략적 마비에 처한 것이다. 상품기획팀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지만 안심전환대출 이후 내놓을 신상품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이제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상품도 내부의 판단과 전략이 아닌 당국의 입을 보고 만들어야 할 상황"이라며 "안심전환대출 이후 눈높이가 낮아진 소비자들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매일 회의를 하고 있지만 답이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은행의 고위 임원은 "정책금융의 주도로 은행의 공공성 역할만 부각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라며 "공공성만큼 수익성도 중요한데 시장기능으로 다시 돌아올 경우 반금융정서가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은행의 아이디어가 담긴 상품보다는안심전환대출ㆍ자전거보험ㆍ통일금융 상품처럼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는 정책 상품이 시장을 주도하게 된다면 은행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창조금융을 통한 금융산업 혁신 과제도 요원해질 수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저소득층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면서 정치권에서는 당장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숨고르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며 "위기가 아니라 위기를 예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금융기관이 나서야지, 정부가 '나를 따르라'며 나설 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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