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정부와 정치권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업에 전방위 압박에 나서자 경제계가 반격의 채비에 나선 듯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은 10일 '민간소득·지출 패턴 변화와 시사점'보고서를 통해 임금인상이 이루어져도 정부의 바람대로 내수진작으로 연결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경연은 이날 예정에 없던 참고자료를 낸 데 대해 "최근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소득 중심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무리한 소득증대가 내수 진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시사점을 제시하기 위해 작성했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2006∼2013년 경상소득은 31.6% 증가했지만 소비지출은 22.0% 증가하는데 그쳤다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가계는 불요불급한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경연은 또 2006∼2013년 가계소득은 30.6% 증가했지만, 이 가운데 사업소득 증가율은 19.2%에 불과하다며 소득증대의 문제는 임금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자 소득부진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경연의 이같은 주장은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경기회복을 위해 꺼내든 동원가능한 모든 수단이 결국은 기업의 희생과 부담으로 귀결된데 대한 경제계의 잠재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현재 경제계를 향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도 임금인상에 동참 촉구 ▲고용률 70%달성을 위해 정규직의 채용확대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대졸 미취업자ㆍ고졸ㆍ중장년ㆍ경력단절여성ㆍ장애인ㆍ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의 일자리창출확대▲고용이 창출되는 신규투자와 기존 계획한 설비투자의 집행 ▲민간투자사업에의 적극적인 참여 등의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성장론의 큰 축을 기업이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경제계는 정부가 기업에 너무 많은 요구를 그것도 박근혜정부 임기말인 2017년이라는 데드라인을 두고 몰아붙인다고 보고 있다. 임금인상의 경우도 민간기업에서는 노사합의로 이뤄지는 자율적인 구조임에도 정부가 공개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정부의 철학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경우도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준다는 측면에서는 수긍할만하나 정작 최저임금 인상은 자금난과 경영난에 봉착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최저임금 역시 말 그대로 '이 이상은 줘야 한다'는 하한선으로, 최저임금의 요건만 충족하면 기업이 구성원들에게 주는 봉급은 노동조합과의 협의를 거쳐 기업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계열사와 정유업계가 임금을 동결한 것도 실적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임금인상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경영 상황을 감안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의 요구대로 '통 큰' 임금 인상을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기업의 임금은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문이 아니다"라며 "기업이 경쟁력을 높여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올라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재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팀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근로소득 증대세제' '배당소득 증대세제' '기업소득 환류세제'로 요약되는 '가계소득증대 3대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근로소득과 배당소득 증대세제의 경우 임금을 올리거나 배당을 늘릴 때에는 세금을 깎아준다는 취지로 마련됐고 기업소득 환류세제의 경우 임금ㆍ배당ㆍ투자에 활용되지 않는 유보금에 대해서는 10%의 법인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기업에게는 당근과 채찍인 셈이다. 그런데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도 전에 정부가 임금인상을 비롯한 전방위 요구를 한 대해 재계에서는 "정부가 너무 조급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부가 올해 상반기에 투입하기로 한 정책 패키지 10조원도 경기를 살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정부가 지난해 2기 경제팀 출범 이후 경제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46조원의 정책 패키지 중 잔여분은 15조원이다. 이미 31조원은 집행이 됐다. 최근의 부진한 경제지표는 정부의 이런 정책 수단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3월에 "규제는 암덩어리"라면서 규제개혁에 올인했고 최경환 경제팀이 20여개 이상의 경기부양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업 현장에서 실제 투자계획을 만들고 집행을 준비하기에는 약발이 약하다는 지적도 나완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의 함정에 빠져 연말정산 논란 등 꼼수증세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한 것과 같이 '증세없는 복지'와 '소득주도의 성장론'이 자칫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과거와 같은 관(官)주도의 경제성장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면서 "정책 효과를 국민이 체감하려면 대외적 여건 개선이 필요하고 노사정,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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