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교사 기록…송복 교수 “백성들 한양에서 왜군에 협력”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에 차마 기록하지 못한 사실 중 하나가 일반 백성이 왜군을 환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측 기록 중 다음과 같이 나온다.
“아침에 그의 병사들이 도착하자 도시 전체에 깃발을 세우도록 하고 어느 누구도 조선인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말 것을 엄격하게 지시했다.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그곳에 사는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원한 물을 비롯해 일본에서 호시이이(乾飯)라 부르는, 쌀을 쪄서 말린 밥과 그밖의 제철 음식을 가지고 성문으로 나와 병사들을 초대했다.
낯설기만 한 수많은 병사와 무장 군인들 사이에서 어떠한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있었던 것에 감복한 부녀자와 어린 아이, 노인들은 자발적으로 친절하게 일본군 병사들에게 손짓까지 하면서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아겨 먹을 것을 제공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일본군들은 감탄했다고 한다.”
이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한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쓴 책 ‘일본사’ 중 한 대목이다. 이 기록 중 ‘그의 병사’에서 그는 왜군 선봉대장 중 한 명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가리킨다. 이 책은 국내에 ‘임진난의 기록’으로 번역됐다.
고니시는 상주 전투에서 승리한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 영주들은 농민들을 매우 가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이제 전하께서 그들을 인정과 관대함으로서 살피기로 하신 것을 보면 그들은 그로 말미암은 기쁨을 감추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니시는 이와 관련해 “제가 지나는 곳에서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전하의 서명이 분명히 들어간 증서를 나눠주고 있다”며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선무공작을 벌이고 있음을 보고했다.
프로이스는 조선 백성을 학살하고 약탈한 왜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일부 궁핍한 조선인들은 일본인처럼 삭발하고 일본인인 양 가장해 같은 국민을 위협하고 약탈했다”고 적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낸 책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에서 프로이스의 기록이 사실이었다고 확인한다. 송 교수는 “일반 백성은 왜군이 오래 주둔한 한양에서 마찰ㆍ갈등 없이 잘 지냈고 오히려 협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 따르면 백성들은 오히려 경복궁 등 세 궁궐을 불질렀고 장례원(掌隸院)등 정부기관의 문서를 불태워 없앴다. 장례원은 공사노비 문서를 관리하고 노비소송을 관장하던 기관이었다.
송 교수는 “조선시대 일반 백성한테는 국가공동체 의식이나 애국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애 유성룡은 ‘징비록’에 임진왜란 시기 일반 백성의 행동을 기록하지 않았다.
징비록은 ‘환란을 교훈 삼아 후일 닥쳐올지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한다’는 뜻이다. 징비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문장인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에서 따온 단어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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