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KB금융지주가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시 현직 회장에게 우선권을 주는 승계 프로그램 도입에 대한 최종 결정을 연기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대다수 사외이사들은 현직 CEO에 연임을 먼저 묻는 방안에 찬성했지만 일부 이견 때문에 좀 더 의견을 더 모아보기로 했다.
최종 결정이 미뤄지면서 리딩금융그룹의 위상 회복과 신속한 경영안정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던 'KB금융 윤종규호(號)'의 혁신 속도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날 KB금융은 이사회를 통해 국내 4대 금융지주 최초로 CEO 선임시 현직 회장에게 우선권을 주는 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었다. 차기 CEO 선임시 현직 회장에게 연임 여부를 묻고 희망할 경우 공정한 심사를 통해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하고 경영 전략의 연속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과거에는 회장과 내부임원, 외부인사를 포함해 평가 후 신임 CEO를 결정했는데 현직 CEO와 내외부 후보군간의 대립과 갈등이 불거져 문제가 됐었다.
승계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윤종규 회장은 경영 전략의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정착이 될 경우 외풍을 막는 부수적인 효과도 생겨 KB금융의 경영안정화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B금융은 지난 석 달간 외부 컨설팅업체의 연구용역과 내부 논의를 거쳐 승계 프로그램 내용을 담은 지배구조 개선안을 확정했다. 차기 CEO 선임시 현직 회장에게 연임 여부를 묻고 희망할 경우 사외이사로 구성된 지배구조위원회에서 재무성과, 고객만족도, 비재무성과 등 그룹경영실적을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물론 내외부 후보군과 비교 후 연임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차기 CEO 선임시 현직 회장에게 우선권을 주는 승계 프로그램은 국내 금융권에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신한금융그룹의 경우 2011년 KB금융처럼 글로벌 기업들의 여러 사례를 벤치마킹한 뒤 CEO 승계프로그램으로 만들면서 차기 회장 선임시 현 회장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는 조항을 추진하려다 적용하지 않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뱅크오브아메리카와 JP모건체이스 등 글로벌 주요 은행에서는 이미 비슷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며 "KB금융이 리딩금융그룹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승계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현직 회장에게 연임에 대한 프리미엄을 줄 경우 경영성과를 높일 수 있는 동기 부여도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KB금융의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일각에서는 내부권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KB금융측은 CEO 및 외부로부터 독립성이 확보된 이사회가 형성돼 있고 금융당국도 감독과 통제를 하기 때문에 내부권력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방침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지배구조 개선안을 추진했다.
KB금융 사외이사 대부분도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김영진 KB금융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대부분은 현직 CEO에 연임을 먼저 묻는 방안에 찬성한다"며 "금융회사가 아니고 어떤 회사라도 잘 하면 (계속)해야 하고 잘못하면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현 회장부터 포함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서도 KB금융의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해 긍정적인 목소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개선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경영권 보장과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 경영진ㆍ이사회 간 역할 분담 같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기존과 비교해서 진일보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KB금융은 다음달 9일 이사회를 다시 열어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다음 번 이사회에서 승계 프로그램을 도입하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을 최소화하고 경영 연속성을 통해 지속성장을 하겠다는 방향에 KB금융 이사회가 찬물을 끼얹지 않을 것"이라며 "윤종규 회장이 KB재건을 위해 취임 이후부터 혁신과 변화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서 이사회가 그 노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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