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주식 지금 사야할 때…지배구조 변화는 '생존카드'
[아시아경제 대담=김종수 증권부장, 정리=서소정 기자]"핀테크(금융+기술)는 국내 대기업에 치중된 산업구조를 바꿀 패러다임 변화의 신호탄입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최근 핀테크 관련 규제 해제 움직임으로 금융과 IT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상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오랜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간편한 결제시스템에 익숙했던 리 대표는 한국의 공인인증서 기반 결제시스템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했다. "한명의 배드가이(Bad Guy)를 막기 위해 다수의 선량한 자가 희생해야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안정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수많은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해외 직구 열풍에서 한국 시장이 소외된 것 역시 불편한 결제시스템이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핀테크 옹호론자가 된 것은 미국에서의 경험이 한 몫했다. 전자상거래 회사 이베이는 2002년 13억 달러에 온라인 결제서비스 업체 페이팔을 인수했다. 리 대표는 "페이팔은 이베이가 인수했지만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현재는 시가총액이 더 크다"며 "편리한 금융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신사업을 창출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핀테크가 금융·증권업계 화두인 가운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활로가 돼 줄 것이라 확신했다. 리 대표는 "삼성전자 등 과거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철강·반도체·자동차는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며 "핀테크는 과거에 안주하기 보다 앞으로 두뇌쓰는 비즈니스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5~10년 뒤 먹을거리를 생각하며 두뇌를 빠르게 회전하는 기업이 빛을 볼 것이라는 그는 투자자 관점에서도 두뇌쓰는 기업에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증시 잠재력 충분…"지금은 사야할 때"= 최근 글로벌 증시 대비 국내 증시의 부진에 대해서는 "한국 주식시장의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3~4년 후를 내다본다는 관점에서 지금은 주식을 사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주요국가 가운데 국내증시보다 저평가 된 나라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러시아 정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주식투자 없이는 한국에 중산층도 없다'는 게 그의 평소 지론이다. 제로금리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자산을 굴릴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적어진 반면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면서 은퇴 후 삶은 더욱 길어졌다. 은퇴 후 자산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주식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리 대표는 "한국 은퇴세대가 은퇴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사교육비라고 들었는데 이는 충격적"이라면서 "사교육비에 투자하는 것보다 알짜 주식에 투자해서 훗날 자식들의 창업자금에 보태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차별화된 시각을 나타냈다.
그는 국내주식 저평가 이유를 단기수익률에 집착하는 잘못된 '주식문화(equity culture)' 탓이라고 꼬집었다. "주식보유기간 1년은 너무 짧다"며 "주식을 최소 5년 이상 묻어둬 은퇴 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 참여자들간 신뢰 결여도 이유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주식시장 참여율이 낮고, 퇴직연금은 지나치게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는 현상 역시 주식시장 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소라는 생각이다.
◆기업지배구조 개편은 생존 이슈…"부자 순위 바뀔 것"= 올해 주식시장의 화두로는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꼽았다. 그는 "기업지배구조변화가 본격화되면서 부자 순위가 바뀌게 될 것"이라며 "이제 기업 지배구조 이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서바이벌(생존) 이슈"라고 짚었다. 주주의 이익을 적대시하는 기업은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고,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문화도 자연스럽게 정착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급부상도 투자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리 대표는 "중국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며 "이는 한국 기업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이자 중국으로의 진출도 꾀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올해 새로운 중국 펀드 출시를 계획중이다. "중국은 국가 특성상 현지를 잘 아는 파트너와 손 잡는게 필수"라는 그는 중국기업 리서치를 위한 현지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다.
지난해 초 부임한 존 리 대표는 기존 펀드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소수 펀드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수익률 바닥권이었던 메리츠운용을 살려내 주목받았다. 대표펀드인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지난달 22일 기준 1년 수익률이 19.24%(제로인 집계)로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 수익률 -1.54%를 20.78%포인트나 앞질렀다.
리 대표는 "펀드를 선택할 때 가장 살펴봐야 할 지표중 하나는 매매회전율"이라면서 "종목을 자주 교체하거나 불필요한 매매를 빈번히 하는 펀드는 경계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메리츠운용의 매매회전율은 50.61%다. 일부 운용사의 매매회전율이 150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그는 "적당한 매매회전율은 20~30%라 생각한다"며 "올해 그 수준으로 맞출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꼴찌를 맴돌던 운용사 성과가 크게 개선되자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리 대표는 "운용사에도 고유의 문화가 중요하다"며 "부임 후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하고 불필요한 회의와 보고서를 없애는 등 행복한 직장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펀드매니저의 주요 덕목으로 "반대할 수 있는 자세"를 꼽아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소신을 갖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조직문화가 성과를 끌어올리 게 한 원동력"이라는 리 대표는 "오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웃었다.
한국명은 이정복으로 연세대 경제학과 재학시절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과감히 중퇴를 결정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펀드매니저 직업을 갖기 전에는 미국 회계법인 피트 마윅(현재 KPMG)에서 7년간 공인회계사로 근무했다.
이후 펀드매니저로 변신을 거듭한다.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클라크(1991~2002), 도이치자산운용(2002~2005), 라자드자산운용(2005~2013) 등 미국계 자산운용사에서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활동했다.
특히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클라크에서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최초의 뮤추얼펀드인 '코리아펀드(The Korea Fund)'를 1991년부터 15년간 운용해 유수 해외투자자들의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이 기간 코리아펀드의 규모는 1억5000만 달러에서 15억 달러로 증가했다. 2006년에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와 함께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장하성펀드)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한국시장에 대한 확고한 투자철학과 지식을 바탕으로 장기간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해 한국시장에 해외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대담= 김종수 증권부장/ 정리= 서소정 기자/ 사진=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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