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서 공인된 지구의 나이는 46억년이라고 한다.(정확히는 46억30년이다. 내가 이를 학교에서 배운 것이 30년 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생명체의 역사는 38억년 전 설, 43억년 전 설 등으로 엇갈리지만 단세포 생물의 출현에서 시작해 무척추 동물, 해조류, 삼엽충, 양서류, 파충류 등을 거쳤으며 현생 인류가 약 250만년 전에 출현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확인되고 있다. 이 같은 생명의 발달사를 보면 지금의 인류 지능과 고등성은 단지 250만년이 아닌 무수한 생명체들의 수십억 년간의 명멸과 진화의 축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어쩌면 이 점에 인간의 이중성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인간의 행태가 영장이면서 미물이고, 고등이면서 하등인 것은 인간의 진화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인류의 사회문화사는 결국 이 미물ㆍ하등성을 사회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통제하는 규범과 도덕의 확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의 배움도 이 '전(前) 인간적'인 면을 억제하며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한 학습이었고, 엘리아스가 이름붙인 것처럼 서양의 '문명화 과정'도 결국은 사회적 유아가 성인이 돼 가는 것에 다름아닌 것이다.
한 인간의 성장도 이 문명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성장이란 유아기로부터 청소년기, 성인기로 발전하는 것과도 같이 정신적으로 문명화의 유아에서 성인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화, 혹은 사회적 진화 과정은 대개 불균형 발전을 한다. 이는 사람들 간 불균등이기도 하고 한 사람 안에서의 불균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좀 더 유아적이며 어떤 이는 좀 더 어른스러운 것이다.
유아적인 면의 한 특징은 내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일과 남의 일, 내 책임과 남의 책임을 분간 못하는 것이다. 사회의 진화는 대체로 높은 지위를 가지는 이는 그 권한만큼 내 책임이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해 온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의 불가사의는 이런 점에서 결핍과 유아성이 있는 이들, 진화가 덜 된 이들이 오히려 높은 지위와 권한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요즘 최고 권부(權府)-재부(財府)에 있는 이들의 언행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현대인의 머리에서 저 옛 생명체의 미진화된 의식을 보는 듯하는 일이다. 수억 년의 생명사가 한 몸에 공존하는 모습, 이건 생명의 신비인가 아니면 한국의 신비인가.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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