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한 입장서 한 발 물러나…팀 우승시키지 못한 아쉬움, 팬들의 성원으로 현역 연장 가능성 커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대한민국에서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로 인정받는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이제야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차분한 목소리로 동료에게 고마움을 전하던 차두리(34ㆍFC서울)가 환한 얼굴로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한 마디에서 전설적인 축구스타인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었던 그의 진짜 바람이 묻어났다.
차두리는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올 시즌을 끝으로 2년 계약이 끝나는 FC서울과 계속 동행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1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4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거취 문제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시즌이 끝났으니 일단 피로를 풀면서 많은 분들과 얘기를 나누고 정답을 찾겠다"고 했다. 은퇴와 현역생활 연장 사이에서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올 한 해 쉴 새 없이 달렸다. 정규리그 스물여덟 경기를 뛰며 2도움을 올렸고, 대한축구협회(FA)컵 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까지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했다. 은퇴를 염두에 두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베테랑처럼. 체력은 여전히 왕성했고, 경기력도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덕분에 2011년 11월 15일 레바논과의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1-2 패) 이후 2년 10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다시 발탁됐다.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베스트 11 부문에서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이름을 올렸다. 언론사 투표 112표 가운데 80표를 받아 경쟁자인 최철순(27ㆍ전북ㆍ19표)과 신광훈(27ㆍ포항ㆍ13표)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은퇴에 무게를 두던 결심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그는 내년 1월(9~31일) 호주에서 열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대신 FC서울과 재계약 여부에 대해서는 "대표팀과 소속팀은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지난 10월 7일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은퇴를 처음 언급한 뒤 "결론은 거의 났다"던 단호한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이다.
유종의 미를 목표로 했던 팀의 우승이 무산되면서 심경이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FC서울은 1998년 이후 16년 만에 우승을 노린 FA컵 결승(11월 23일)에서 성남FC에 승부차기(2-4 패)로 져 준우승에 그쳤다. 제주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원정경기(11월 30일)에서 2-1로 역전승하면서 3위로 내년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따낸 것이 위안이다.
차두리는 "아버지가 FA컵에서 준우승한 뒤 '우승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같이 뛰는 후배들은 누구보다 우승에 대한 절실함이 크다. 한 번에 목표를 달성했다면 소중함이 덜할지 모른다. 내년에 우승하면 그 가치를 더 크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이는 자신을 향한 동기부여일지도 모른다. 그는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던 2010-2011시즌 스코틀랜드 컵과 이듬해 정규리그 우승을 함께했으나 국내무대에서는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K리그 입단 첫 시즌인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에 우승컵을 내준 경험도 있다.
차두리가 "당분간 대표팀과 아시안컵 준비에 전념하고 싶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그의 잔류를 원하는 FC서울 팬들의 바람은 간절하다. 포항과의 정규리그 37라운드 홈경기(11월 26일ㆍ0-0 무)에서는 '두리형 가지마'라는 플래카드로 마음을 대신했다. 최용수 FC서울 감독(41)도 조심스럽게 차두리의 결심을 기다린다. 그는 "(차두리가) 큰 부담을 이겨내고 K리그에 훌륭하게 적응했다. 인품이 뛰어나고 밝은 성격으로 후배들을 잘 이끌었다. 은퇴와 관련해 꾸준히 대화를 하고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차두리는 아시안컵 대표팀 명단에 포함될 경우 오는 15일 제주 서귀포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아시안컵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년 2월 17일 열릴 AFC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가 기다린다. FC서울은 한 달 동안 쉬고 새해부터 팀 훈련에 돌입한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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