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유가 폭락 예견하고도 감산 결정 보류
사우디는 美셰일업체들이 먼저 감산하길 원해
"非 OPEC 회원국들 공급초과 해결 동참해야"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7일(현지시간) 사실상 원유 감산을 거부하면서 국제유가가 6% 넘게 폭락했다. OPEC은 유가 폭락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감산 결정을 미룬 것은 미국 셰일오일 개발업체들을 겨냥한 치킨게임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OPEC이 이날 오스트리아 빈 회의에서 하루 원유 생산 할당량(쿼터) 동결을 결정하고 대신 회원국들이 쿼터량을 준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번 합의로 OPEC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40만배럴 가량 줄 것으로 예상된다. OPEC은 앞서 지난 9월 기준으로 하루 3040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고 밝힌 바 있다. OPEC이 자체적으로 정한 하루 쿼터량은 3000만배럴이다.
BNP파리바는 OPEC 회의에 앞서 원유 수급 균형을 위해서는 100만~150만배럴의 감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에서 실질적인 감산 규모가 40만배럴에 그치기 때문에 원유 공급 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유가는 추가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이날 영국 런던 인터콘티넨털 선물 거래소(ICE)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내년 1월물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6.65% 급락한 배럴당 72.58달러에 거래를 마쳐 4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뉴욕 금융시장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휴장한 상황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도 시간외거래에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70달러 선 아래로 밀렸다. 블룸버그는 일본 도쿄시간 28일 오전 8시37분 현재 WTI 가격이 전 거래일 대비 6.7% 급락한 배럴당 68.78달러를 기록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회의는 결국 OPEC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승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애초 이번 회의를 앞두고 유가 급락을 우려, 감산을 요구하는 OPEC 회원국들이 많았다. 이란이 최대 100만배럴 감산을 요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감산에 회의적이었다. OPEC이 내분에 휩싸였다는 전망도 나왔는데 결국 쿼터 동결로 결론난 것은 사우디의 뜻이 관철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우디가 유가 폭락을 알면서도 쿼터 동결을 선택한 것은 미국 셰일 개발 업체들을 겨냥한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사우디가 미국 셰일업체들이 감산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감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사우디가 시장 영향력 유지를 위해 유가 하락을 견디면서 미국 셰일 개발업체들과 제살 깎아먹기 식의 치킨게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OPEC 사무총장이 된 디자니 알리슨-마두케 나이지리아 석유장관은 유가 폭락을 야기하고 있는 원유 공급과 관련해 비(非)OPEC 회원국들도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분히 미국 셰일업체들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셰일 혁명 덕분에 사우디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시티그룹은 셰일 혁명 덕분에 내년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940만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는 현재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 950만배럴에 맞먹는 수준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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