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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초록꽃(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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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심장에서 터져나오는 듯한 붉은 빛깔과 형상 때문에 사랑의 원형으로 이쁨받아 왔다. 왜 푸른 잎사귀와 줄기를 지닌 것이 저토록 붉은 것을 내뿜는가. 그러고 보니, 많은 꽃들은 제 잎과는 다른 빛의 꽃잎을 만들어낸다. 왜 그럴까. 푸른 것들 속에 뒤섞여서 호접이 찾지못할까봐 튀는 색을 골라 관심을 유도하려는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계곡이 어두운 초봄엔 노랑꽃이 피고, 녹색이 무성한 여름에는 붉은 꽃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꽃들이 주류를 이루고, 이윽고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붉어진 잎의 빛깔을 피하여, 흰 꽃들이 핀다는, 장돈식선생의 통찰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식물은 내면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을 온몸으로 진열하고 도색한다. 꽃은 전면으로 내세운 성기이며, 꽃의 전략은 오로지 지나가는 님을 세워 붙잡아들이는데에 있다. 제 몸과 다른 빛을 내놓는 것은, 인간에게도 어떤 통찰을 준다. 너는 원래 파란 놈인데 붉은 마음을 꺼내놓다니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냐? 네가 어찌 노랑마음, 흰마음을 내놓아 나비에게 아양을 떠느냐? 인간 대 인간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사랑은 존재가 지니고 있는 주변부 모두를 초극하는, 움직이는 중심이다. 사랑의 빛깔이 붉으면 그 장미나무 장미잎 모두가 붉은 것이다. 정몽주의 일편단심은 붉은 존재이다. 그 사람이 비록 흰 뼈(백골)와 검은 흙(진토)으로 변한 몸이라 하더라도 붉은 꽃인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그 꾸밈조차도 사랑의 일부라 할 만한 것이다. 그 가식이 존재의 전체를 새롭게 혁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팎이 똑같은 존재만 상찬된다면, 착하고 예쁘고 강한 사람만 사랑을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처절한 분식(粉飾)과 성형수술로, 사랑을 향해 달려드는 저 마음까지도 사랑의 외연으로 보아주라는 것이 봄날 꽃들의 몸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갈 심산인지, 대책없는 초록꽃들도 있기는 있다. 각시마, 단풍마, 국화마, 끈끈이주걱, 더덕, 천남성, 두루미천남성, 등대풀, 둥굴레, 머위, 보춘화, 옥잠란, 질경이, 삿갓나무의 꽃은 초록이다. 꽃과 잎이 함께 푸르러 묻혀 있다. 대단한 향기가 있던지 대단한 용기가 있던지 둘 중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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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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