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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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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실안노을길에서 바라본 실안낙조. 한국의 9대 낙조로 불릴만큼 붉은 바다를 물들이며 떨어지는 일몰이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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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더 넓은 바다 위로 솟은 크고 작은 섬과 등대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냅니다. 출렁거리는 파도 옆 구불구불 뻗은 해안길을 따라 노을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순간 바다는 온통 붉게 물들고 죽방렴을 따라 고기잡이 나선 배는 힘찬 뱃고동 소리를 울립니다. 이른 새벽 고즈넉한 절집 다솔사 솔숲에 안개가 가득 번집니다. 안개를 잔뜩 머금은 단풍잎들이 가는 가을이 아쉬워 마지막 가을 빛을 그려 줍니다. 어느새 절집 선방에 차향이 그득합니다.


한 장의 달력만 남았습니다. 시간의 야속함이 가득 밀려옵니다. 이런 저런 상념과 조급증에 몸과 마음은 바쁘기만 합니다. 경상남도 사천으로 여행길을 잡았습니다. 사천이란 지명이 다소 생소할까요. 그럼 삼천포는 어떠신가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인구에 회자됐던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라는 표현 때문에 조금은 친숙하게 들리겠지요. 이 삼천포를 품고 있는 곳이 바로 사천입니다. 바다를 물들이는 아름다운 낙조가 있고 차향 가득한 절집에서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또 있습니다. 별주부전의 고향인 비토섬엔 싱싱한 굴내음이 살아있고, 이순신장군의 기운이 서린 대방진굴, 비봉내마을 대숲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차향 가득한 다솔사 숲길 따라 걸으며 시름잊고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고즈넉한 소나무길을 따라 다솔사 가는길에 만난 아침풍경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 기슭에 다솔사(多率寺)가 있다. 사천 여행에서 첫 번째로 가봐야 할 곳이다. 다솔사는 절집의 위세보다는 고즈넉한 솔숲과 절집이 가진 이야기들로 풍성하다.

사하촌 주차장에서 다솔사 경내까지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위로 쭉쭉 뻗은 자태가 힘차다. 새벽 안갯길을 따라 솔숲을 걷는 맛은 한갓지고 바람소리가 들릴 듯 사위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든다.


신라 지증왕 때(503년)에 창건한 고찰 다솔사는 단출하다. 대여섯 채의 가람들이 전부다. 그러나 절집에는 1,500년 세월의 이야기가 흐른다.


첫 번째는 바로 다솔사 적멸보궁 뒤편의 차밭이다. 다솔사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차문화를 이끈 곳이다. 그래서 '차 좀 마셔봤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다솔사의 차가 이름이 난 것은 1960년대 다솔사 주지 효당 스님이 수백년 묵은 야생 차나무를 다듬고, 새로 차나무를 가져다 심으면서부터다. 스님은 찻잎을 물에 데친 뒤 9번을 덖어내고 황토방에서 말려 그 유명한 '반야로'란 명차를 만들어냈다.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다솔사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다솔사에서 마주한 늦가을 풍경


두번째는 독립운동의 역사다. 다솔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다. 만해 한용운을 비롯해 김법린, 최범술, 김범부 등이 은거하며 항일 의지를 불태웠다. 특히 '안심료(安心療)'라는 요사채는 한용운이 머무른 곳. 요사채 앞 측백나무는 회갑을 맞은 그가 지인과 함께 심었단다. 만해는 차를 덖던 효당 스님의 스승이다.


소설가 김동리 역시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이 절집에 머물렀다. 그는 산 아래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 '등신불' '황토기' 등 대표작들은 이 때의 체험이 바탕이 된다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나 소재가 됐던 사연들이 절집 주변 마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솔사 인근 흥곡마을의 묵곡천변에는 매향비가 있다. 고려말 왜구의 극심한 횡포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우왕 13년(1387)에 세웠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살기가 평안함을 미륵보살께 비옵니다'라는 의미를 가진 204자를 매향비에 새겼다.또 곤명면 은사리에는 세종대왕과 그의 손자인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태실이란 왕가의 자손들이 태어나면 태를 봉안하고 표석을 세웠던 곳이다.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비토섬갯벌에서 건져올린 자연산굴


별주부전의 원형인 판소리 수궁가의 무대 비토섬과 토끼섬, 거북섬도 들러보자. 지금 비토섬갯벌에선 자연산 굴수확이 한창이다. 싱싱한 굴 한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바닷향이 입한 가득 번진다.


◇붉게 물이든 실안노을길 앞에 서면 눈이 황홀해
실안노을길은 이순신바닷길 중 4코스다. 총거리 8km로 삼천포대교에서 시작해 모충공원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이다. 삼천포대교를 내려서 만나는 대교공원에는 '일몰이 아름다운 거리'라는 이정표와 함께 거북선이 있다.


실안낙조를 만나기 위해서는 삼천포대교를 뒤로 하고 노을길을 따라 가야한다. 이내 바다 한가운데 나무 말뚝을 박아 만든 죽방렴을 만난다. 죽방렴은 조류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방식으로 말뚝을 조류가 흐르는 방향에 맞춰 V자로 벌려두고 끝에 원통형 대발을 설치한다.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힘을 잃은 물고기가 대발에 모이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 우리나라에서 바다 물살이 가장 센 곳은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이고 그 다음으로 물살이 센 곳이 삼천포 대교가 있는 사천 앞바다다.


서산으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느낌의 색상이 온 세상을 물들이듯 실안해안을 감싼다. 실안낙조는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해와 바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 산자락부터 조각 조각 떠있는 작은 무인도들과 등대, 죽방렴이 한데 어우려져 장관을 연출한다.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실안낙조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실안노을길에 있는 선상카페


직접 눈앞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몰과 마주하면 왜 실안낙조가 우리나라 9대 일몰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이유를 알 듯하다.


실안노을길은 바다와 어우러지는 길의 운치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다. 제일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삼천포대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자태가 매력적이다. 낮에는 범선의 돛대처럼 바다 위를 가로지른 풍경이 멋있고 밤에는 오색의 조명이 반짝이며 아름다움을 뽐낸다.


삼천포대교에서 삼천포항으로 향하다 보면 대방진굴항과 만난다. 지금으로 치면 군항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대방진굴항에 거북선을 숨겨두기도 했다. 굴항 인근에서 벌어진 사천해전은 거북선이 최초로 쓰인 전투다.


삼천포 동쪽 해안 끝은 남일대해수욕장이다. 신라말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남녘땅 제일의 경치'라고 해 남일대로 불린 명소다. 남일대의 명물은 코끼리 바위다. 코끼리가 물을 먹는 듯한 형상의 바위가 신기하다. 코끼리 바위 가는 길은 이순신 바닷길 가운데 5코스 '삼천포코끼리길' 이다.


사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사천,삼천포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면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전통영간 도로를 이용.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사천IC(실안낙조나 해안길 이용시) 곤양IC(다솔사)로 나서면 된다.


△볼거리=믿기어렵지만 2400년 된 소나무를 중국에서 들여와 깎아 만들었다는 백천사 와불(사진)이 볼만하다. 이 절집에 사는 소의 울음소리가 목탁소리를 닮았다고 해 우보살로 불린다. 임진왜란때 일본이 쌓은 선진리성과 비봉내마을 대나무숲, 항공우주박물관, 삼천포대교, 사천녹차단지, 삼천포어시장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한려수도 유람선투어(055-835-0172~3)도 할 수 있다.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남일대 코끼리바위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백천사와불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비봉내마을 대숲


△먹거리=싱싱한 해산물을 맛보려면 삼천포수협회센터가 좋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른 뒤 2층에서 상차림 비용을 내고 먹는다. 실안동 청하횟집(055-835-0024)은 싱싱한 제철 회를 내놓는다. 파도한정식(055-883-4500), 오복식당(055-833-5023)등은 해산물 한정식이 소문났다. 사천 냉면도 유명하다. 사천읍 수석리의 재건냉면(사진 055-852-2132)은 전분 함량이 높은 쫄깃한 면을 사용하고 고명으로 육전을 올리는게 특이하다.

해를 삼킨 海, 경남 삼천포 앞바다에 취하다 사천 재건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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